20/12/28 17:05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몰아 보기
2020년 한 해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한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칼럼 모음입니다. 홈페이지 링크와 인쇄본과 동일한 e-book 링크로 보실 수 있습니다.


건강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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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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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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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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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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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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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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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못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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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맛 1 - 있는 것과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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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맛 2 - 먹는 것과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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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맛 3 - 지난 것과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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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소설가의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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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秋夕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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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와 고양이, 그리고 레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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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와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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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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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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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28 12:57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모두 다르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같이 사는 사람도, 그 길이 완전히 중첩되지는 않는다. 사소한 결정부터 중대 결심까지, 사람은 누구나 매일 갈림길에 선다.

“이런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10여 년 전, 너구리 굴에 살던 내가 담배를 끊었을 때, 주변에선 상찬이 아니라 비난이 쏟아졌다. 중독의 대명사인 니코틴과 절연하는 건 독한 사람이란 걸 방증한다는 얘기였다. 앞으로 소개팅을 해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대두됐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가 선택한 길이 나를 보호하고 또 고립시켰다. 나는 극도로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도 일정 수준 건강을 유지했다. 그만큼, 그 크기만큼 친구들과 결속력을 잃었다.

“난 너의 모든 걸 용서하지만, 그 옷은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어머니의 말은 변곡점이었다. 그의 과거는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무엇 하나 쉽게 사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도 마음 가는 대로 쓰지 못했다. 오래된 것들, 고장 나서 버려야 하는 물건도 몇 번씩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런 사람이 나를 보고, 구질구질해서 못 봐주겠으니, 새 옷을 좀 사라고 재촉했다. 돈이 없으면 사주겠다고 했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내키는 대로 옷을 사던 청년 대신 10년 된 옷을 입은 삐딱한 남자가 있었다. 그만큼 나는 변해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우위에 두고, 소유에 열을 올리던 과거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인 소비를, 물질이 주는 기쁨을 거스르며 살고 있었다.

인스턴트식품과 배달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무난하기보다는 까다롭게, 넘치기보다는 부족하게, 맛없는 음식으로 영위하는 재미없는 인생.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중독으로부터 자유, 물질로부터 자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글쓰기에서의 자유를 꿈꾼다. 코미디의 길을 가는 것.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이른바 문단이라는 곳에서, 엄숙하고 진지한 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곳에서, 코미디 소설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코미디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하위문화로 취급받았고, 비극만큼 정서적 호소력과 보편성을 획득하기도 어려우며, 작가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동영상 콘텐츠와 웹툰이 넘쳐나는 시대에 글로 사람을 웃기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는 코미디를 한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가장 다루기가 힘든 문학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인들이 앞다투어 만류한다. 이제 코미디는 그만하면 안 되냐고. 난해하고, 불편하고, 재미없고, 다 말장난 아니냐고.

그래서 나는 말한다. 죽기 전에는 웃기겠다고. 오래 살라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게 특정인만이 할 수 있는 영웅적 결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길을 간다. 일상에서, 꿈을 향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삶의 지향점을 향해 예각으로 각도를 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온 삶의 궤도에서 180도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길 위에 사람이 있다. 국내에서는 통하지 않는 영어 성적으로 영미권 국가에 정착한 사람도 있고, 어렵게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독립 서점을 차려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모두 다 내려놓고 세계 일주를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자신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소설가로서 꽃길만 걷고 싶지 않느냐고.

나는 말한다. 꽃길만 걷고 싶다고. 그런데 가시밭길이라고. 맨발이라고. 혼자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겠다고. 그게 코미디라고.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일곱 번째 칼럼입니다. 이렇게 1년간의 연재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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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 17:39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제주 표류기
섬을 달린다. 바람이 달다. 제주의 바람은 결이 다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따라 금방이라도 귤꽃 향 가득한 감귤 밭이, 울창한 삼나무 숲이,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질 것만 같다.

최고의 드라이브를 위해 고가의 차량을 빌렸다. 뚜껑이 열리는 빨간색 스포츠카. 하루 대여료가 호텔 숙박비와 맞먹는다. 기름은 하마처럼 먹는다. 길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셈이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계산기를 들고 여행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길고 긴 인생에서 하루쯤은 오늘만 살 것처럼 살고 싶다.

공항 주변을 벗어난 제주의 도로는 월급날 퇴근길만큼 아름답다. 눈에 익은 풍경들도 새롭다. 서귀포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산록남로에 이어 녹산로를 달리다 보면,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제주의 시계처럼 느리게 돌아간다. 따스한 빛을 머금은 억새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일렁이는 은빛 물결에 젖어 들다 보면 어느새 해안도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드문드문 야자수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검은색 화산 지형과 눈부신 백사장이 교차한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해 보이는 바다 풍경이지만, 똑같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제주에 매료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바다가 있다. 파도가 밀려드는 모래밭에 사랑을 새기는 연인들처럼,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달린다. 나를 추월하는 이들 너머로 끝없이 바다가 펼쳐진다.

때로는 길을 헤매도 좋다. 길을 잃어버려도 상관없다. 관광지도에 없는 숨겨진 곳들이 그렇게 발견된다. 호젓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포구, 이름 모를 작은 오름, 낮은 돌담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노루가 뛰어노는 신비한 곶자왈까지. 파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때까지, 나는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 많은 아이이고 싶다.

잠시 잊었다. 제주에서는 마음은 비우고 배는 채워야 한다. 뱃살에 손을 얹고 굳게 다짐한 대로, 돌하르방에 맹세코, 하루에 다섯 끼는 먹어야 한다. 공항 근처 해장국집에서 몸국을 먹고, 표선에 위치한 국숫집에서 멸치국수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기왕이면 한 자리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서귀포 전통시장에 스포츠카를 주차한 나는 큰손이 된 기분을 한껏 만끽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아 목구멍이 근질근질하다. 그런 마음으로 마늘통닭, 딱새우회, 오메기떡, 한라봉을 구입한다. 얼마 들이지 않고 세상을 다 가졌다.

제주에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가는 곳. 나의 바다, 세화해변을 거닌다. 주변이 석양으로 붉게 물든다. 더없이 완벽한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찜찜하다. 뭔가 하나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 제가 혼자 와서 그런데, 같이 흑돼지 먹지 않을래요?”

그것은 흑돼지였다. 그리고 그걸 같이 먹어줄 그녀였다. 아름다운 해변의 여인.

“흑돼지든, 백돼지든 상관없으니 빨리 가시죠.”

그래야만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부푼 꿈을 안고 제주 여행을 시작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사고가 났다. 새별오름 근처 나홀로나무를 보러 가는 길. 길에 쓰러져 있던 나무를 피하다가 차가 도랑으로 떨어졌다. 보닛이 찌그러졌고, 범퍼가 완파됐으며, 바퀴 한 쪽이 뒤틀렸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 저렴한 차를 빌리고, 별도의 사고 보상 보험도 들지 않았는데, 이걸 물어줄 돈이면 빨간색 스포츠카를 빌려, 가고 싶은 곳을 다 가고, 먹고 싶은 걸 다 먹는 것도 가능하겠다. 렌터카 업체에서는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출동 업무가 지연되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제주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비와 바람이 갈수록 거세진다. 우산은 속절없이 망가졌고, 어디선가 미역이 날아와 얼굴을 때린다. 내 머리다. 저 앞에 한라산이 아닌 먹구름이 만든 킬리만자로가 보인다. 절로 처절한 배경 음악이 깔린다. 어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는 절규한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여섯 번째 칼럼입니다. 사실에 기반한 제주 표류기입니다. ^-^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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