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7 13:34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몰아 보기
2022년 한 해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한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칼럼 모음입니다. 홈페이지 링크와 인쇄본과 동일한 e-book 링크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마흔셋, 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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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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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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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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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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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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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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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공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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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과 여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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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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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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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인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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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네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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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에서 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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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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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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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2/27 12:47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길 위에서
길 위에서 수평선을 가로지른다. 노을해안로를 따라 펼쳐지는 제주 서쪽 바다, 흐린 오후의 겨울 바다가 온몸에 밀려든다.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다. 최백호의 <길 위에서> 가사처럼 대답 없는 길을 외롭게 걸어왔다. 문득 돌고래가 보고 싶어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신도포구를 찾았다. 이곳 해안가에서는 심심찮게 남방큰돌고래를 목격할 수 있는데, 이를 반영하듯 돌고래 조형물과 전망대가 마을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다.

어느덧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마을의 상징이 하나 더 늘어날 뻔했다.

돌고래를 기다리다 돌이 된 사람.

정신이 혼미하다. 바람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파도의 포말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이윽고 머리가 물미역이 됐다. 바다색이 더 깊고 짙어진 늦은 오후까지 돌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이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얼굴이 얼어붙었는데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웃지 않고서는 생각의 공백을 메울 수 없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제주에 온 게 맞는가, 굳이 왜 보기만 해도 시린 겨울 바다에서 돌고래를 봐야 하는가. 온갖 상념들이 들끓는 와중에 끝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과연 돌고래를 보고 안 보고가 그렇게 중요한가?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본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멀리 걸어왔던 길, 스쳐 지나간 풍경들, 오로지 바다에 몰입한 시간들, 한없이 크고 넓은 세계를 유영하는 상상.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뿐이었다. 조금 망가지고,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해도, 훌훌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행위다. 때로는 여행 도중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데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이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해안도로에 잘못 들어섰을 때였다.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안내해서 짜증이 나던 찰나, 투명한 햇살이 찬란하게 길 위를 비추었다. 순간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해안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상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아, 이래서 돌아왔구나.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내가 길을 잘못 왔구나.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여전히 길 위에서 나침반을 들고 있다.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게 채워질지 여행자인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어떤 길을 걸을지,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오늘도 발을 내딛는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열여섯 번째, 마지막 칼럼입니다. 그동안 제주 표류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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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2/05 18:10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제주의 맛
식도락을 빼놓고 여행을 말할 수 있을까. 여행지가 제주라면 어떨까. 미식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미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제주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흑돼지구이, 옥돔구이, 말고기정식, 갈칫국, 몸국, 고사리해장국, 성게미역국, 각재깃국, 보말칼국수, 고기국수, 다금바리회, 방어회, 고등어회, 딱새우회, 꽁치김밥, 오메기떡, 당근케이크 외에도 제주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는 제주의 맛이자 여행의 맛 그 자체다. 결국 여행은 추억으로 남고 추억은 맛으로 기억된다.

내가 제주에 산다는 이유로 지인들이 종종 현지 맛집을 물어온다. 여행하면서 꼭 가봐야 하는 식당이나 숨겨진 맛집 같은 걸 알려달라는 게 골자다. 그런 의뢰를 받을 때마다 나는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좋아하는 곳들을 소개할 수 있어 설레기도 하지만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간의 사례를 되돌아보면 맛집 소개만큼 쉽고 또 어려운 것은 없다. 같은 음식점을 두고 “거기 정말 최고더라”는 상찬도 들은 반면에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혹평도 돌아왔다.

굳이 맛집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집들은 대체로 소박하고 수수한 곳들이다. 큰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닌, 불현듯 그 맛이 생각 날 때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춘자멸치국수’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노포다. 이곳의 멸치국수는 내가 제주에서 끝까지 놓지 않을 단 하나의 음식이다. 이른바 소울푸드인 셈이다. 그 모양새는 무엇 하나 특별한 게 없다. 투박한 양은 냄비에 푹 삶아낸 중면과 적당한 농도의 멸치육수, 고명으로 올린 파와 고춧가루가 전부다. 단순함의 미학인 평양냉면만 해도 소고기로 육수를 내야 하기에 재료비가 많이 들어간다. 멸치국수는 사실 멸치가 전부다. 나는 이렇게 간단한 재료로 이 정도의 맛을 내는 음식을 본 적이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한없이 가벼운데 더없이 진한 맛.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마음도 푸근해진다.

제주 시내에 있는 식당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함흥면옥’이다. 도내 대물림 맛집으로 선정된 이 냉면집은 6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수준 높은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냉면이 건네는 묘한 중독성은 식당 옆으로 이사가고 싶은 욕구마저 불러일으킨다. 허름한 외관이지만 푸른 바다를 뒷마당으로 품은 곳. 구좌해안로에 인접한 ‘잠녀네집’은 녹진하고 고소한 전복죽이 일품이다. 그간 꽤 많은 곳에서 전복죽을 먹어봤는데 여기보다 맛있는 곳은 없었다. 또 이곳의 모듬 해산물은 조연이 아닌 당당한 주연으로 한껏 미각을 끌어올린다.

한라산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사먹었던 사발면이 그렇게 맛있었던 이유는, 흔하디흔한 인스턴트 라면이 그곳에서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맛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여행의 맛은, 제주의 맛은 특정인의 향유물이 아닌 모든 여행자에게 열려 있는 특권이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열다섯 번째 칼럼입니다. 제주에 있는 그 많은 식당 언제 다 가보나.        

칼럼 링크
http://bit.ly/3hZfc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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