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5 20:44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좁은 문
좁은 문을 열었다.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였다.

집 현관 안쪽에 있는 중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리지 않았다. 묵직한 목제 프레임과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미닫이문. 멀쩡하던 문이 난데없이 꿈쩍도 하지 않아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옆으로 밀었더니 끽끽 소리를 내면서 한 뼘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무리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가 한동안 문틈에 끼어 있었다. 내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제주까지 내려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와 문을 손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혼자 다루기 힘든 크기와 무게였고 세 개의 문이 연동되어 열리는 구조도 단순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품도 하나 떨어져 나왔다. 이런데도 수리를 맡길 데가 없었다. 문을 생산한 회사는 문을 닫았고,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터무니없는 비용을 부르고, 철물점은 그런 일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하나의 전화번호가 남았다.

아저씨를 그렇게 만나게 됐다. 그가 낡은 트럭에 잡동사니를 잔뜩 싣고 나타났다. 오십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나이. 제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남루한 행색에 비쩍 마른 몸. 인도 길거리에서 보던 기인에 가까웠다. 도무지 무언가를 고칠 수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려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다. 작업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지연됐다. 시작부터 그는 스피커폰으로 한참이나 사적 통화를 했다. 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내분이신가 봐요?”
“와이프예요.”
“…….”
“이제 일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일은 더 커져만 갔다. 그가 문을 눕혀 놓고 아랫부분을 깎아내고 있었다. 말없이 깎고 또 깎고 반복해서 깎았다. 이건 나무 안에서 조각상을 찾으려는 미켈란젤로나 방망이 깎는 노인의 환생이었다. 나는 된통 걸린 게 분명했다. 문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수리비는 작업시간에 비례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지금 문 고치시는 거죠?”
“문 깎고 있잖아요?”
“그만 하면 안 될까요?”
“문이 반만 열려도 괜찮아요?”

시간은 그 이후로도 한참 흘렀고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라던 그때, 아저씨가 나를 불렀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새로 설치된 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눈길이 닿는 어느 곳 하나 훼손된 곳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은 건 문 아래 삽입된 부품,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바퀴가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고장 난 것과 똑같은 부속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형태가 다른 바퀴 부품을 넣기 위해 문 아랫부분을 세밀하게 깎고 있었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리비였다. 그는 “3만원만 주세요.” 하고는 돈을 받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쿨하게 사라졌다.

잠시 마법의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 누구도 선뜻 나서 주지 않던 일을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씨가 해결했다. 단지 겉모습과 짧은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는 내 마음 어딘가를 수리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좁은 문을 열었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여섯 번째 칼럼입니다. 제주는 여러모로 신비스러운 곳입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xj4M0DDGJ000&pageIndex=1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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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5/07 14:45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를 생각한다. 제주에서 시작한다. 도시를 떠나 제주 시골 마을에 오기까지 서른 번 이상 제주를 여행했다.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찾은 이유를 떠올린다. 또 무엇 때문에 제주에서 기한 없는 여행을 시작한 것인지 자문한다.

여행지로써 제주를 하나의 관점으로 조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하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면 제주는 낙원에 가깝고, 강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돼 하염없이 공항에 갇혀 있다 보면 제주는 고립과 단절의 섬이다. 물가를 생각하면 잠시 머물 만한 관광지에 불과하고, 거듭해서 제주를 찾는 사람이 많은 걸 감안하면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상반된 측면이 존재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그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제주 부분은 복잡다단하다. 혹자는 내가 전원에 사는 것을 낭만과 감성의 차원에서 바라보는데 현실은 엄혹하다. 이른 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잡초들과 시골 냄새,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벌레들을 보면 다가올 여름이 무척 기대된다.  

여행의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하나의 틀로 규정할 수 없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자연에 동화되는 것,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거나 맛집을 탐방하는 것, 생각을 비우며 걷는 것, 많은 사진을 남기는 것, 숙소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그 무엇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내게는 사람이다. 한없이 추상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 사람이 여행의 이유다. 그것은 단순히 커플 여행이나 단체 관광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여행도 결국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며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천혜의 자연으로 유명한 섬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인종 차별에 가까운 불친절을 경험하며 대자연의 감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안 좋은 기억만 뇌리에 남았다. 반대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도리어 여행이 고양되고 삶의 태도가 크게 전환되기도 했다.  

제주를 그렇게 여행한 이유가, 아직 제주인 이유가 선명해지고 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고,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의 속성이듯, 서울에서보다 제주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단지 내가 제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인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행에 나라는 존재가 크고 작은 이유가 되고 있다. 여행 도중에 잠시 들르거나 아예 내가 사는 곳을 거점으로 여행을 오기도 한다. 십수 년간 연락이 끊겼던 동기도 제주에서 재회했다. 먼 곳까지 찾아와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발견한다. 다시금 여행의 이유를 재확인한다.

나는 기꺼이 지인들의 제주 여행 가이드가 된다.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여행 온 친구와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몇 년 전 그때처럼 백사장을 함께 거닐었다. 친구는 여전히 이곳의 풍경이 좋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너와 함께 있어서 더 좋다는 말은 빼고 말했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다섯 번째 칼럼입니다. 여행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GRRr8DDGJ000&pageIndex=1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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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4/11 17:38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여행하는 삶에 관하여
여행하는 삶에 관하여라고 썼지만 어쩌면 그것은 여행 같은 삶에 관하여다. 내게 제주는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라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이다. 무엇이 맞는 것이든 하나의 명제만큼은 변함이 없다. 삶은 여행이다.

가끔씩 내가 사는 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잊는다. 바로 앞에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과 숲을 두고도 누리지 못한다.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반경 500미터 내에 이렇다 할 상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선 모든 게 일이고 도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서 치열하게 사는 후배가 전화로 사는 법을 말해준다.

살아가니까 살아지네요.

여행하는 삶을 살려면 먼저 여행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행을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면 여행하는 삶은 누구나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도시가 여행지인 것처럼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에 실제로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면 이해가 더해질 것이다.

나는 일상의 여행을 좋아하고 스치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무 옷이나 입고 밖을 나서도 제주의 배경은 나를 여행자로 만든다. 유명한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봄날의 제주는 어디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달력 사진이다. 차로 서귀포에 있는 대정오일시장을 향한다. 도로를 따라 유채꽃과 벚꽃, 각양각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봄을 잊지 않고 깨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만큼 신비로운 순간을 마주한다. 마치 누가 나를 위해 교통 신호를 통제한 듯 멀리서 빨간색이었던 신호가 때를 맞춰 파란색으로 바뀐다. 단 한 번의 막힘없이 길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얼굴에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친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어느덧 대정오일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끝자리가 1과 6인 날에 열리는 오일장. 오늘은 분명히 1일인데도 시장에 정적이 감돈다. 맑은 봄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인근에서 쓰레기를 줍는 노인을 발견하고 왜 시장이 열리지 않는지를 물었다. 노인이 어려운 질문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한다. 어제가 31일이었다고. 31일에 장이 열릴 때는 1일에는 열리지 않는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아무것도 사지 못한 시장에서 깨닫는다. 여행은 그런 것이고 삶은 이런 것이다. 시장 주변 주택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꽃밭을 발견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네 번째 칼럼입니다. 계속 표류하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ma1mQIDDGJ000&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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