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1 16:01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동물과 공존한다는 것
반려동물을 키우기 적합한 환경에 살고 있다. 잔디 마당이 딸린 제주 시골집에 혼자 산다고 상상해보면, 으레 개나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이웃 주민이 얼마 없어 적막하기까지 한 시골 동네. 대문도 없고 집 둘레는 낮은 돌담으로 되어 있어 사실상 사방이 트여 있는 집. 사람이 소유한 집이라기보다는 자연을 잠시 빌려 쓰는 쪽에 가깝다. 동물들의 왕래도 잦다. 때로는 집을 점유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매일 집 주변을 살피는 내가, 공포 영화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내가 심장이 멎을 뻔한 일이 있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거실에 앉아 있는 나를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누군가 나를 쳐다본다는 확신이 들어 주방 쪽 창문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돌담 위에 올라선 검은 고양이가 노란색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집에 등장하는 동물은 길고양이가 대표적이다. 제주 중산간 지역에는 들개도 출몰한다고 하고, 들쥐와 뱀이 나온다고 고백하는 집주인도 있다. 참새와 멧비둘기, 까치, 꿩, 매, 그밖에 이름 모를 새들은 나를 철새 도래지로 소환하며 수시로 날아든다. 언제쯤 노루와 고라니, 멧돼지가 집 앞에 나타날지도 알 수 없다.

동물들이 무섭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왜 동물들이 사람들이 사는 집 주변에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이유야 복합적이겠지만 핵심은 무분별한 난개발로 서식지를 잃어버렸거나 쓸모없는 물건처럼 유기되어 갈 곳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결국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동물들을 쫓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다.

다시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면,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기 적합한 환경에 살고 있지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기에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생명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내가 동물과 공존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집고양이든 길고양이든 주기적으로 밥을 준다는 것은, 동물을 길들인다는 것은, 그 행위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발생한다는 걸 의미한다. 내가 외롭다고, 동물이 귀엽다고 혹은 불쌍하다고 가볍게 접근할 일은 아니다.

물론 동물을 사랑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존재한다. 특히 버려진 동물들을 돌보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그런 마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크게는 난개발, 공장식 축산부터 줄여야 하고, 동물들을 쉽게 판매하거나 키우게 해서도 안 된다. 동물을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이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적정 개체수 유지를 위해 중성화 수술 등도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역설적으로 절대적인 동물의 숫자는 줄어들 수 있다. 동물과의 공존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한다면, 그 다음은 자연이 알아서 할 것이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여덟 번째 칼럼입니다. 생명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pHsWSkDDGJ000&pageIndex=2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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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6/22 11:27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어떤 하루
커튼을 젖히자 투명한 빛이 창 안으로 스며든다. 빛이 공간을 채우면 온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깃든다. 마음이 열린다. 맑고 포근한 날의 제주와 비가 오고 흐린 날의 제주는 서로 다른 곳이다. 다른 장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두말 할 것 없이 전자다. 그것은 컬러 사진과 흑백 사진, 푸른 바다와 검은 바다, 제주 해물라면과 그냥 라면 이상의 차이다. 제주에서 일주일 내내 흐리거나 비오는 날씨를 경험하면, 그런 환경에 혼자 있다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다만 삶을 노래하기보다 비관하기 쉽다. 줄곧 흐리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맑은 날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 날은 특별하다. 실상 어제와 똑같은 하루일 뿐인데 특별한 하루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날.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일단 어디든 밖으로 나가야 하는 그런 날이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곳이 제주라면, 내 앞에 펼쳐지는 곳이 모두 제주라면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계획 없이 나왔다고 해서 후회할 일은 없다. 조금 헤맬 뿐이다. 일단 떠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든 여행은 있어도 후회하는 여행은 없다. 미션을 수행하듯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할 이유도 없다. 여행은 경쟁이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천천히, 꾸준히 쌓아가는 여행의 마일리지는 소멸하지 않는다. 멀리 떠나거나 관광지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관광지가 아니어도 여행할 곳은 많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 된다. 어느새 나는 한경면 고산리 마을을 걷는다. 단층 위주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상점, 식당이 정겹다. 번잡하지 않고 평화롭다. 학교 앞 떡볶이를 재현했다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사인볼(회전간판)이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다. 볕 좋은 날 포구에 줄줄이 널어놓은 오징어도 몇 마리 산다.

그저 지나가는 길이라고 여기며 지나쳤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이곳이 이런 곳이었는지, 이런 풍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특히 자구내입구 사거리에서 자구내포구로 이어지는 노을해안로. 환상적인 꽃길을 자랑하는 녹산로나 중산간 지역을 시원하게 관통하는 산록남로보다 나은 건 그 이름뿐일지도 모른다. 수월봉 지질트레일이나 당산봉, 차귀도를 가기 위한 관문 정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을해안로 주변에 펼쳐지는 탁 트인 평야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개방감을 선사한다. 끝없이 밭이 넓어 더없이 하늘이 높다. 맑은 날 빛을 발한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질료들이 특별한 풍경을 만든다. 그 풍경이 아무것도 아닌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 여행이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특별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어떤 하루를 건넨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일곱 번째 칼럼입니다. 제주에서 날씨는 정말 중요합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ocxX64DDGJ000&page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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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5/25 20:44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좁은 문
좁은 문을 열었다.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였다.

집 현관 안쪽에 있는 중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리지 않았다. 묵직한 목제 프레임과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미닫이문. 멀쩡하던 문이 난데없이 꿈쩍도 하지 않아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옆으로 밀었더니 끽끽 소리를 내면서 한 뼘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무리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가 한동안 문틈에 끼어 있었다. 내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제주까지 내려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와 문을 손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혼자 다루기 힘든 크기와 무게였고 세 개의 문이 연동되어 열리는 구조도 단순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품도 하나 떨어져 나왔다. 이런데도 수리를 맡길 데가 없었다. 문을 생산한 회사는 문을 닫았고,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터무니없는 비용을 부르고, 철물점은 그런 일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하나의 전화번호가 남았다.

아저씨를 그렇게 만나게 됐다. 그가 낡은 트럭에 잡동사니를 잔뜩 싣고 나타났다. 오십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나이. 제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남루한 행색에 비쩍 마른 몸. 인도 길거리에서 보던 기인에 가까웠다. 도무지 무언가를 고칠 수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려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다. 작업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지연됐다. 시작부터 그는 스피커폰으로 한참이나 사적 통화를 했다. 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내분이신가 봐요?”
“와이프예요.”
“…….”
“이제 일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일은 더 커져만 갔다. 그가 문을 눕혀 놓고 아랫부분을 깎아내고 있었다. 말없이 깎고 또 깎고 반복해서 깎았다. 이건 나무 안에서 조각상을 찾으려는 미켈란젤로나 방망이 깎는 노인의 환생이었다. 나는 된통 걸린 게 분명했다. 문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수리비는 작업시간에 비례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지금 문 고치시는 거죠?”
“문 깎고 있잖아요?”
“그만 하면 안 될까요?”
“문이 반만 열려도 괜찮아요?”

시간은 그 이후로도 한참 흘렀고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라던 그때, 아저씨가 나를 불렀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새로 설치된 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눈길이 닿는 어느 곳 하나 훼손된 곳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은 건 문 아래 삽입된 부품,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바퀴가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고장 난 것과 똑같은 부속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형태가 다른 바퀴 부품을 넣기 위해 문 아랫부분을 세밀하게 깎고 있었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리비였다. 그는 “3만원만 주세요.” 하고는 돈을 받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쿨하게 사라졌다.

잠시 마법의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 누구도 선뜻 나서 주지 않던 일을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씨가 해결했다. 단지 겉모습과 짧은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는 내 마음 어딘가를 수리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좁은 문을 열었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여섯 번째 칼럼입니다. 제주는 여러모로 신비스러운 곳입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xj4M0DDGJ000&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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