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12:24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도서관 가는 길이 그렇게 험난할 줄은 몰랐다. 인산(人山). 글을 쓰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잃지 않고, 길 위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 했다.

아파트 15층에서 타고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좌우로 갈라지는 문 사이로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3층에서 1층까지는 걸어서 10초 남짓한 거리. 굳이 몇 배나 되는 시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겠다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그마저도 탑승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린 뒤 10초가 다 지나도록 그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직감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문이 닫히려는 순간, 그는 열림 버튼을 다급히 누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민망한 표정이나 미안하다는 얘기는 없었다. 다시 스마트폰에 눈길을 돌린 채, 알아서 피하라는 식으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길을 걷는데 어떤 미래가 오래된 과거를 향해 접근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친구가 구 스카이씽씽 현 킥보드에 몸을 맡긴 채 무서운 기세로 전면에 등장했다. 걷기 위해 조성된 인도에서, 사람을 위해 만든 인도에서, 걷지도 않고 사람을 위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속도를 올렸다. 좁은 인도 폭과 빠른 속도. 해맑은 웃음.

직감했다. 나를 치고 가겠구나.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 걸음을 멈췄지만, 그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내달렸다. 오래된 예의를 미래의 모빌리티에 매단 채로.

얼마 못 가 진로를 방해하는 거대 생명체와 마주쳤다. 개였다. 그냥 개가 아니라 티브이에서만 보던 썰매를 끄는 개였다. 개는 목줄을 하고 있었다. 그냥 목줄이 아니라 무한대로 늘어나는 목줄이었다. 동물권 신장을 위해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것은 존중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때를 전제로 했다. 대형견이 지구 반대편까지 늘어날 것 같은 목줄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충분히 공포심을 일으킬 만했다.

발이 땅에 붙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나이 지긋한 개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는 안 물어요!” 집채만 한 개를 ‘우리 애기’라고 했다.

직감했다. 나에게 달려들겠구나.

주인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짖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귀청이 아니라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지만, 그 개와 나는 초면이었다.

개 주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

어렵게 도서관에 도착해 열람실 맨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불안의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켰다. 책상마다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 군데군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 한 사람이 콕 집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굳이 붙어 앉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리 선택은 이용자의 권리이므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공공 도서관, 바로 옆자리에서 음식 먹기를 반복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책가방이 아니라 장바구니 같았다. 그의 가방에서 다채로운 주전부리가 줄지어 나왔다.

직감했다. 오늘 글쓰기는 틀렸구나.

포장지를 찢고, 우물거리고, 쩝쩝거리고,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포장지를 뜯고, 우물거리고, 쩝쩝거리는 행위가 1시간가량 되풀이됐다. 그에게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맛집이었다.

꼭 그렇게 풀코스로 먹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도서관에서는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초기에 제지하지 못하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자리를 옮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용자들이 빠르게 들어차 빈자리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완성했는지 모를 글 한 편을 들고 돌아오는 길. 동네 전파사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나쳐도 좋은 건 두 가지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람을 지키는 안전.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곧장 컴퓨터를 켜고 내 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이 사람 글을 시간 들여 읽었다는 게 너무 슬프다.

오늘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네 번째 칼럼입니다. 교열자가 맘대로 바꾼 부분이 있어서 슬프긴 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22utI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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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8 23:41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영감의 친구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글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어떨 때 영감이 떠오르는지 묻는 사람에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를 들려줘야 할까.

거리의 풍경을 관찰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할 때, 혹은 물소리만 남긴 채 샤워를 할 때…. 뭔가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너무 거창하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많은 창작자들이 언급한 바 있는 그런 얘기였다.

그래서 목소리를 점잖게 가다듬었지만, 아니었다. 글을 쓸 때, 특히 몰입해서 창작을 할 때 나는 며칠간 샤워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사방이 막힌 방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게 영감은 우아하게 오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뇌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서적인 활동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벌어지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렇게 홀로 버티다 보면 키보드가 닿는 손끝에 영감이라고 부를 만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흩어지고 말았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지만, 혼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잡학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고, 엉덩이와 의자가 하나 된 물아일체의 상황에서 그분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데는 무리가 따랐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추천받은 책을 읽거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다 좋았다. 역사 속 위인이나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이들의 얘기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훌쩍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다 좋았다. 분명 영감을 얻는 좋은 방법이지만, 내게 맞는 방법은 아니었다.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영감이 필요할 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영감과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지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와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했다.

“바쁘지? 잠깐 통화 괜찮아?”

“친구하고 잠깐 전화도 못할 만큼 바쁘면, 그게 사는 거냐?” 그가 언제나처럼 툴툴댔다.

바쁜 직장인. 바쁘다는 그 흔하고 평범한 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는 그럴듯한 말. 지인들 중에 바쁘다는 걸 은연중에 내세우거나 대놓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그가 유일했다.

내가 한숨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요즘 슬럼프야. 어떡하지?”

“뭘 어떡해? 넌 매일이 슬럼프였어.” 그가 다시 툴툴댔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살가운 사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듣기 좋은 말이나 맘에 없는 얘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와 친해질 수 있었다. 나보다 더 까칠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유일했다.

친구와 만났다. 나오라고 하면 나오지 않는 영감과 달리, 그는 내가 나오라고 하면 나왔다. 항상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누가 보면 앙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늘 핑퐁 게임의 연속이었다.

“문장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 힘을 빼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도 너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데.”

“여기가 조금 무겁고 난해하지 않아?”

“어쩌라고? 쉽게 썼다는 제품 사용 설명서도 읽으면 난해해.”

그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과 이해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럴듯한 것보다는 솔직한 것이 낫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에게서 나오는 얘기가 정확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믿을 수 있었다. 격의 없는 대화는 그래서 가능했다. 또 다른 시각을 갖는 건 그렇게 가능했다.

영감은 멀리 있거나 특별한 데서 오는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을 지켜봐주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서 나왔다. 영감의 비밀이나 창작의 비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믿었던 내가 바보가 되는 순간, 영감은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재밌게 쓸 수 있을까?”

내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질문을 던지자 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작가는 넌데.”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세 번째 칼럼입니다. 공교롭게도 봉준호 감독 뒤에 제 글이 있네요. ^-^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49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LnMOoDGJM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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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21 22:53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음식남녀
인생의 맛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늦은 저녁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한 입 먹어봐.”

커다란 창에 달빛이 낮게 머무는 그곳은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라고 믿기 힘들 만큼 조용했다. 사람 대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커피 향이 공간에 가득 퍼져 촘촘한 하루를 이완했다. 그녀가 검은 손길을 내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녀가 내게 떠먹여주듯 내민 포크에는, 초콜릿케이크에 녹인 초콜릿을 얹어 초콜릿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초콜릿케이크가 있었다.

차마 그 손을 난처하게 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으로 케이크를 받았다.

“잘 먹네? 맛있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내가 엉겨 붙은 입으로 말했다.

내가 단맛을 즐긴 건, 초등학교 시절 탕약을 마신 뒤 털어 넣던 자두 맛 사탕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내 사전에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롤리팝, 도넛, 시럽, 휘핑크림 따위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삶이 그다지 달콤하지도 않았지만, 달콤한 것이 삶을 단맛으로 채워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가 직접 만들어서 건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은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에 그대로 있었다. 그 냉동실 문이 그녀에 의해 열리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 손에는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들려 있었다. 한두 번 홀짝이면 사라지고 마는 작은 잔이었지만, 이 카페에서 제공하는 가장 쓴 커피였다. 나는 쓴맛이 좋았다. 쓰면 쓸수록 좋은 그 맛에 경도됐다. 쓴맛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그 맛을 즐겼다. 동물들이 독으로 인식해서 본능적으로 뱉어내는 쓰디쓴 것들이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순간 씀바귀를 생으로 먹고, 고삼차를 들이켜도 미동도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모금 마셔볼래?”

내가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담긴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친 퇴근길에 맛보는 진한 초콜릿케이크 하나로 세상 행복해 보였던 그녀는, 단것을 너무 많이 먹어 입이 쓴 사람처럼 잔을 받았다.

“잘 마시네? 괜찮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별로 안 쓴데?” 눈은 웃지만, 입은 울고 있는 그녀가 말했다.

그녀와 내가 보유하고 있는 미각은 극과 극이었다. 그녀는 쓴맛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입 안이 씁쓸해지는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디는 ‘달콤초코’였다. 단맛이 인생의 궁극이라 믿고 있었다. 단것을 먹으면 천국이 열린다고 말했다. 누구나 저렴한 입장료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천국. 그녀에게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롤리팝, 도넛, 시럽, 휘핑크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내게서 씀바귀를 뺏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쓴맛과 단맛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맛에 대한 우리의 지향은 정반대였다. 같은 음식점에서 늘 다른 음식을 먹었다. 치킨집에서 나는 프라이드, 그녀는 양념이었고, 냉면집에서도 그녀는 비빔냉면, 나는 물냉면이었다. 분식집에서도 나는 김밥, 그녀는 순대였고, 모처럼 탕수육으로 합의를 본 중국집에서조차 그녀는 ‘부먹’, 나는 ‘찍먹’이었다. 그녀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그녀와 걸었다. 그리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봤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오늘 저녁 다시 출근해도 좋은 사람처럼 환해진 얼굴로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 해?”

“아니,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그 맛.”

“어?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 가지 맛으로는 알 수 없는 인생의 맛. 우리는 서로가 가지지 못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 맛을 다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한 입, 한 모금일지라도 각자의 취향을 공유하고, 또 존중했다. 맛이란 어쩌면 순간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인생의 조각을 함께 맛보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인생의 맛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그녀가 포장해온 초콜릿 칩 쿠키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입 먹어봐.”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두 번째 칼럼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MP5e3E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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