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 12:23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마흔 즈음에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됐으니까 아저씨는 빠져요.”

지하철 4호선 두 번째 칸.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하는 학생들을 말리려다가 머쓱해졌다. 둘이 합쳐도 내 나이와 거리가 멀었지만, 그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너와 나 모두가 친구인 개방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 시대정신이라 믿고 있었다.

내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마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기 어려운 단어들로 욕 배틀이 이어졌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거친 표현들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된소리로 라임을 맞췄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존재하는 싸움이 잦아들 때까지,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소음 공해 수준의 아무 말 대잔치보다 더 듣기 싫은 게 있었다.

같은 칸에 있던 노년의 여성이 승객들 가운데 나를 콕 집어 물었다.

“아저씨, 이거 미아사거리까지 가요?”

내가 학생이었을 때 지금의 내 나이. 그녀가 목적지를 못 찾는 것일까, 내가 지하철을 잘못 탄 것일까.

다음 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사라진 10량의 지하철.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다고 믿어왔는데,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역에 도착하고 보니 10년의 세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10년의 나이가 고스란히 내게 더해졌다.

“이 아저씨가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해야지!”

서른 즈음에는 결코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마흔 즈음에. 이길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국 듣게 되는 말이었다.

“10회에 200만원!” 시간을 이기게 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분명히 나는 얼굴에 점만 빼겠다고 말했으나, 그걸로는 티도 안 날 것이라고 미리 결과를 자신하는 전문가가 있었다. 그는 현존하는 최신의 기술을 적용할 것이며, 최저의 비용을 청구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렇게 명망 있는 병원에서 이름도 생소한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비용이 저렴한 것은 틀림없었다. 피부를 깎아내는 듯한 안면 통증이 시술 비용에는 포함되지 않은 듯했다.

인고의 시간 끝에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반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똑같았다.

“오늘 되게 피곤해 보인다.”

99%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는 제로에 가까웠다. “어제 날 샜지?”, “또 술 먹었어?”, 심지어 “태닝했어요?”라는 반응도 존재했다.

지독한 감기처럼, 나이를 숨길 수 없는 나이. 내게는 마흔이 그 경계선이었다. 영 포티(Young Forty)라는 정체불명의 말로 자위해도, 아무리 젊어져도 39세 364일로 돌아갈 순 없었다. 멋모르고 일주일씩 밤을 새우던 몸이, 이제는 커피를 휘발유처럼 넣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구동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하루 두 끼만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배가 불러서인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의 변화는 변해 가는 정신 상태의 반영이었다. 평소에 안 하던 행동,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스스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신호 대기 상황에서 신용 카드를 운전석 아래로 떨어뜨렸다. 순간 나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제 곧 주행 신호가 떨어질 텐데 도로에 떨어진 카드를 어떻게 주워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몸이 약해지면 반대급부로 정신적인 부분이 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도 않았다. 적막한 공간, 혼자 있는 집에서 티브이를 볼 때면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과 외로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시골 풍경,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은,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만 봐도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내가, 누구보다 눈물이 많아지기 시작한 게 마흔 무렵이었다.

나이는 일면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1학년을 지그시 바라보며, “좋을 때다.”라고 말하는 게 나이다. 20대에 성인이 되었다고 믿었고, 30대에 비로소 사회인 같다고 자평했으며, 40대에 어렴풋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잔량과 늘어나는 삶의 무게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아저씨가 알면 안다고 말을 해야지!”

우리는 모두 미아사거리에서 내렸다. 같은 곳에서 내려 각자의 길을 갔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여섯 번째 칼럼입니다. 제 스타일과 가장 가깝게 나온 글이네요.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PNXlpo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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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31 12:22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호텔에서 한 달 살기
“와, 좋겠다. 선배. 생각만 해도 신나는데? 아침에는 호텔 조식, 저녁에는 거품 목욕과 와인 한 잔!”

내가 집에서 나와 호텔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을 때, 여행 마니아인 후배는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나도 한때 호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 나름의 동경이 막연함으로 바뀌는 데는 몇 날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 전국 각지의 호텔을 이용해 봤지만, 이번 호텔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숙박 시설이자 형태였다.

“그건 여행 가서 하루 이틀 지낼 때 얘기지.”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배는 호캉스도 몰라? 일부러 집에서 나와 여행 기분을 내기도 하잖아? 난 호텔에서 살면 소원이 없겠는데. 며칠이나 머무르는데 그래?”

“한 달.”

“뭐? 한 달? 선배 집에 온천이라도 터진 거야?” 후배의 들뜬 목소리가 정점에 이르렀다.

그녀가 상상하는 호텔은 내가 마주한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은 바다 전망도, 산 전망도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아파트 조망권이었다. 창가 앞으로 거주민들이 보일 만한 거리였다. 위치는 서울 외곽 지역이었고, 주변은 휑해 보이는 도로와 콘크리트 숲뿐이었다. 브랜드 이름이 있는 체인 호텔이긴 하지만, 특급 호텔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기 투숙에 전례 없는 할인을 적용받아 당분간 살게 된 것뿐이었다.

날씨가 따뜻한 동남아 국가나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한국인이 굳이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경우는.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돌이켜 보면, 내가 묵을 호텔이 어떤 곳인지 검색해 볼 때가 가장 좋았다. 숙박 후기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곳에 들어와 후기를 쓰고 있었다. 화면 속 호텔은 실제의 그것과는 달랐다. 가장 좋은 호텔은 늘 사람들이 SNS에서 자랑하는 호텔이었다.

“좋으면서 왜 싫은 척하고 그래? 호텔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후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호텔에서 생활하면 좋을 것 같지? 내 얘기를 좀 들어봐.”

나는 호텔에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들어왔다. 일을 해야 했다. 거주한 지 일주일이 지나가면서 호텔은 차츰 생활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견뎌야 하는 생활일 뿐, 지키고 싶은 일상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밖에서 호텔을 바라보면 그 안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한 달을 살기 위한 시설과 생활용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조리 기구가 없어서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고, 냉장고가 작아서 음식을 보관할 수도 없었다. 매일 호텔 뷔페를 이용할 수 있는 지갑도 없었다. 편의점 음식도 하루 이틀이었다. 세탁기와 건조대가 없어서 빨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달 치 빨랫감은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가장 좋은 세탁 방법은 같은 옷을 최대한 오래 입는 것이었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책상은 좁았고, 오렌지빛 조명은 어두웠다. 햇빛도 잘 들지 않았다. 글을 쓰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별도로 스탠드 3개를 가져다 놓아야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빛에 굶주리게 됐다. 손이 가지 않는 소모품, 환기 시설이나 방음 문제, 상시 전원의 부재 등 하나하나 짚으면 끝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텔이 일반 거주지가 아닌 이상 투숙객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었다. 정작 문제는, 호텔의 최대 장점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아, 이런 사람이었어요?”

겉으로는 친절한 하우스키퍼 아주머니의 속마음. 모르는 사람이 매일 방에 들어와 공간을 정리한다는 것. 내가 펼쳐놓은 물건들과 하루 동안 남긴 흔적들을 확인한다는 것. 내가 영위하는 생활 패턴과 삶의 단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 사생활이 공공재가 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작 집에 있는 것보다 자유롭지 않고,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만 했다.

“특급 호텔 간다고 달라질 건 없겠네, 선배.” 후배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든 사람이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을 떠올리며 말했다.

“응. 집이 최고라는 건 바뀌지 않아.”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다섯 번째 칼럼입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OiFPkwDGJM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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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1 12:24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도서관 가는 길이 그렇게 험난할 줄은 몰랐다. 인산(人山). 글을 쓰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잃지 않고, 길 위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 했다.

아파트 15층에서 타고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좌우로 갈라지는 문 사이로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3층에서 1층까지는 걸어서 10초 남짓한 거리. 굳이 몇 배나 되는 시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겠다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그마저도 탑승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린 뒤 10초가 다 지나도록 그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직감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문이 닫히려는 순간, 그는 열림 버튼을 다급히 누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민망한 표정이나 미안하다는 얘기는 없었다. 다시 스마트폰에 눈길을 돌린 채, 알아서 피하라는 식으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길을 걷는데 어떤 미래가 오래된 과거를 향해 접근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친구가 구 스카이씽씽 현 킥보드에 몸을 맡긴 채 무서운 기세로 전면에 등장했다. 걷기 위해 조성된 인도에서, 사람을 위해 만든 인도에서, 걷지도 않고 사람을 위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속도를 올렸다. 좁은 인도 폭과 빠른 속도. 해맑은 웃음.

직감했다. 나를 치고 가겠구나.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 걸음을 멈췄지만, 그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내달렸다. 오래된 예의를 미래의 모빌리티에 매단 채로.

얼마 못 가 진로를 방해하는 거대 생명체와 마주쳤다. 개였다. 그냥 개가 아니라 티브이에서만 보던 썰매를 끄는 개였다. 개는 목줄을 하고 있었다. 그냥 목줄이 아니라 무한대로 늘어나는 목줄이었다. 동물권 신장을 위해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것은 존중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때를 전제로 했다. 대형견이 지구 반대편까지 늘어날 것 같은 목줄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충분히 공포심을 일으킬 만했다.

발이 땅에 붙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나이 지긋한 개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는 안 물어요!” 집채만 한 개를 ‘우리 애기’라고 했다.

직감했다. 나에게 달려들겠구나.

주인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짖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귀청이 아니라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지만, 그 개와 나는 초면이었다.

개 주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

어렵게 도서관에 도착해 열람실 맨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불안의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켰다. 책상마다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 군데군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 한 사람이 콕 집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굳이 붙어 앉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리 선택은 이용자의 권리이므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공공 도서관, 바로 옆자리에서 음식 먹기를 반복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책가방이 아니라 장바구니 같았다. 그의 가방에서 다채로운 주전부리가 줄지어 나왔다.

직감했다. 오늘 글쓰기는 틀렸구나.

포장지를 찢고, 우물거리고, 쩝쩝거리고,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포장지를 뜯고, 우물거리고, 쩝쩝거리는 행위가 1시간가량 되풀이됐다. 그에게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맛집이었다.

꼭 그렇게 풀코스로 먹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도서관에서는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초기에 제지하지 못하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자리를 옮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용자들이 빠르게 들어차 빈자리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완성했는지 모를 글 한 편을 들고 돌아오는 길. 동네 전파사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나쳐도 좋은 건 두 가지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람을 지키는 안전.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곧장 컴퓨터를 켜고 내 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이 사람 글을 시간 들여 읽었다는 게 너무 슬프다.

오늘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네 번째 칼럼입니다. 교열자가 맘대로 바꾼 부분이 있어서 슬프긴 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22utI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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