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8 23:41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영감의 친구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글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어떨 때 영감이 떠오르는지 묻는 사람에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를 들려줘야 할까.

거리의 풍경을 관찰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할 때, 혹은 물소리만 남긴 채 샤워를 할 때…. 뭔가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너무 거창하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많은 창작자들이 언급한 바 있는 그런 얘기였다.

그래서 목소리를 점잖게 가다듬었지만, 아니었다. 글을 쓸 때, 특히 몰입해서 창작을 할 때 나는 며칠간 샤워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사방이 막힌 방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게 영감은 우아하게 오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뇌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서적인 활동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벌어지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렇게 홀로 버티다 보면 키보드가 닿는 손끝에 영감이라고 부를 만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흩어지고 말았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지만, 혼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잡학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고, 엉덩이와 의자가 하나 된 물아일체의 상황에서 그분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데는 무리가 따랐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추천받은 책을 읽거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다 좋았다. 역사 속 위인이나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이들의 얘기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훌쩍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다 좋았다. 분명 영감을 얻는 좋은 방법이지만, 내게 맞는 방법은 아니었다.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영감이 필요할 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영감과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지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와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했다.

“바쁘지? 잠깐 통화 괜찮아?”

“친구하고 잠깐 전화도 못할 만큼 바쁘면, 그게 사는 거냐?” 그가 언제나처럼 툴툴댔다.

바쁜 직장인. 바쁘다는 그 흔하고 평범한 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는 그럴듯한 말. 지인들 중에 바쁘다는 걸 은연중에 내세우거나 대놓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그가 유일했다.

내가 한숨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요즘 슬럼프야. 어떡하지?”

“뭘 어떡해? 넌 매일이 슬럼프였어.” 그가 다시 툴툴댔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살가운 사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듣기 좋은 말이나 맘에 없는 얘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와 친해질 수 있었다. 나보다 더 까칠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유일했다.

친구와 만났다. 나오라고 하면 나오지 않는 영감과 달리, 그는 내가 나오라고 하면 나왔다. 항상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누가 보면 앙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늘 핑퐁 게임의 연속이었다.

“문장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 힘을 빼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도 너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데.”

“여기가 조금 무겁고 난해하지 않아?”

“어쩌라고? 쉽게 썼다는 제품 사용 설명서도 읽으면 난해해.”

그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과 이해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럴듯한 것보다는 솔직한 것이 낫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에게서 나오는 얘기가 정확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믿을 수 있었다. 격의 없는 대화는 그래서 가능했다. 또 다른 시각을 갖는 건 그렇게 가능했다.

영감은 멀리 있거나 특별한 데서 오는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을 지켜봐주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서 나왔다. 영감의 비밀이나 창작의 비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믿었던 내가 바보가 되는 순간, 영감은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재밌게 쓸 수 있을까?”

내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질문을 던지자 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작가는 넌데.”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세 번째 칼럼입니다. 공교롭게도 봉준호 감독 뒤에 제 글이 있네요. ^-^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49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LnMOoDGJM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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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21 22:53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음식남녀
인생의 맛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늦은 저녁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한 입 먹어봐.”

커다란 창에 달빛이 낮게 머무는 그곳은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라고 믿기 힘들 만큼 조용했다. 사람 대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커피 향이 공간에 가득 퍼져 촘촘한 하루를 이완했다. 그녀가 검은 손길을 내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녀가 내게 떠먹여주듯 내민 포크에는, 초콜릿케이크에 녹인 초콜릿을 얹어 초콜릿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초콜릿케이크가 있었다.

차마 그 손을 난처하게 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으로 케이크를 받았다.

“잘 먹네? 맛있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내가 엉겨 붙은 입으로 말했다.

내가 단맛을 즐긴 건, 초등학교 시절 탕약을 마신 뒤 털어 넣던 자두 맛 사탕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내 사전에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롤리팝, 도넛, 시럽, 휘핑크림 따위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삶이 그다지 달콤하지도 않았지만, 달콤한 것이 삶을 단맛으로 채워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가 직접 만들어서 건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은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에 그대로 있었다. 그 냉동실 문이 그녀에 의해 열리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 손에는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들려 있었다. 한두 번 홀짝이면 사라지고 마는 작은 잔이었지만, 이 카페에서 제공하는 가장 쓴 커피였다. 나는 쓴맛이 좋았다. 쓰면 쓸수록 좋은 그 맛에 경도됐다. 쓴맛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그 맛을 즐겼다. 동물들이 독으로 인식해서 본능적으로 뱉어내는 쓰디쓴 것들이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순간 씀바귀를 생으로 먹고, 고삼차를 들이켜도 미동도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모금 마셔볼래?”

내가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담긴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친 퇴근길에 맛보는 진한 초콜릿케이크 하나로 세상 행복해 보였던 그녀는, 단것을 너무 많이 먹어 입이 쓴 사람처럼 잔을 받았다.

“잘 마시네? 괜찮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별로 안 쓴데?” 눈은 웃지만, 입은 울고 있는 그녀가 말했다.

그녀와 내가 보유하고 있는 미각은 극과 극이었다. 그녀는 쓴맛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입 안이 씁쓸해지는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디는 ‘달콤초코’였다. 단맛이 인생의 궁극이라 믿고 있었다. 단것을 먹으면 천국이 열린다고 말했다. 누구나 저렴한 입장료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천국. 그녀에게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롤리팝, 도넛, 시럽, 휘핑크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내게서 씀바귀를 뺏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쓴맛과 단맛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맛에 대한 우리의 지향은 정반대였다. 같은 음식점에서 늘 다른 음식을 먹었다. 치킨집에서 나는 프라이드, 그녀는 양념이었고, 냉면집에서도 그녀는 비빔냉면, 나는 물냉면이었다. 분식집에서도 나는 김밥, 그녀는 순대였고, 모처럼 탕수육으로 합의를 본 중국집에서조차 그녀는 ‘부먹’, 나는 ‘찍먹’이었다. 그녀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그녀와 걸었다. 그리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봤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오늘 저녁 다시 출근해도 좋은 사람처럼 환해진 얼굴로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 해?”

“아니,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그 맛.”

“어?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 가지 맛으로는 알 수 없는 인생의 맛. 우리는 서로가 가지지 못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 맛을 다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한 입, 한 모금일지라도 각자의 취향을 공유하고, 또 존중했다. 맛이란 어쩌면 순간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인생의 조각을 함께 맛보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인생의 맛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그녀가 포장해온 초콜릿 칩 쿠키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입 먹어봐.”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두 번째 칼럼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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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30 17:29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건강 중독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간판은 해장국이라고 돼 있지만, 해장국은 팔지 않고 닭꼬치를 파는 곳.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약을 파는 사람들을 만났다.

“됐고. 이건 우리 나이 때 무조건 챙겨 먹어야 돼!”

대학원 동기들과 2년 만의 만남. 처음에는 모두 1년 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이내 정신없이 살아온 죄가 더해져 1년이 늘어났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눈에 띄게 성장해가고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에 할증이 붙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래전 추억과 근황을 풀어내는 것도 잠시, 40대 초중반이 된 동기들은 30대 시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1교시와 2교시 수업을 연이어 듣고, 3교시라고 부르던 뒤풀이까지 군말 없이 소화하던 그들이었다.

“항산화제. 젊어지는 약이라고!”

알파벳 순서대로 비타민을 다 챙겨 먹는 남자 동기 비타민 씨가 말했다.
그가 재차 언급한 건 이름도 생소한 아사이베리였다. 효과가 확실하다는 말과 함께 구매 정보도 제공했다. 요즘은 직구가 대세라고 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입을 보면 효과가 확실하다는 게 빈말이 아닌 듯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얼굴은 정확히 2년이 흘러 있었다.

“그래 맞아. 이젠 이것저것 챙겨 먹지 않으면 수저 들기도 힘들어.”

음주 전도사에서 건강 전도사로 거듭난 여자 동기 해독 주스가 거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식사 대용으로 녹즙을 자주 마신다고 했다. 해독 효과가 있는 케일과 위에 좋은 양배추를 번갈아가면서. 때론 섞어서. 내키는 대로.

“아, 빠뜨릴 뻔했네. 이게 진짜야. 신이 내린 선물!”

밀크시슬, 클로렐라, 스쿠알렌, 오메가3, 단백질 셰이크… 그녀의 입에서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건강 관련 식품이 나열됐는데, 그 끝에 마누카꿀이 있었다. 매일 아침 공복에 한 스푼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다들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녀의 얘기에 빨려 들어가던 찰나, 그녀가 사이다병에 수저를 가져가다가 흠칫했다. 병따개가 있음에도 아직 과거의 습관이 남아 있었다. 2년 동안 매일 새롭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마술사 유리 겔라처럼 숟가락을 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수저를 번쩍 들기 위해 그녀가 말한 모든 것을 챙겨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너희들 몸 생각 안 하는구나.”

또 다른 동기, 몸의 수호자가 말했다. 그의 싸늘한 말투에 달아오르던 장내 분위기가 순간 차분해졌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동기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 동기들 가운데 유일했다. 부정확한 건강 정보로 관련 제품들이 오남용되는 행태를 지적해줄 사람은.
그가 주저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도 한창인 줄 알아? 부실하게 그걸로 되겠어?”
“….”

건강은 이미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는 마약 빼고 약이란 약은 다 먹는 듯했다. 밥이 보약이 아니라 보약이 밥이었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먹지도 않고 듣기만 했는데 속이 쓰리고 울렁거렸다.
그가 할 말을 잃은 동기들에게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그에게 건강은 지향점이라기보다는 이상향에 가까웠다. 100세 시대라고 했다. 건강이 최고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라고 했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마땅히 건강의 주인이어야 하는데도 건강의 인질이 된 것은 아닐까. 건강을 앞세워 불안을 파는 사람들의 돈줄이자 임상실험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몸에 좋다는 걸 먹지 않으면 무언가 결핍이 된 듯 불안하고,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과다 복용과 장기 복용도 마다하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나 자가 진단을 근거로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 관련 제품을 권하는 것.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데 닿을 수 없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는 것.
건강 중독은 건강이 아니라 중독이었다.

“아, 그런데 건강염려증을 없애주는 약은 없나?”

동기들과 헤어지는 길에 비타민 씨가 물었다. 그러자 몸의 수호자가 말했다.

“그러게. 약을 그만 먹게 해주는 약은 없을까?”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코미디 형식의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LmuvGM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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