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2 17:31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제주 단상
1. 제주 신창풍차해안도로 주변에는 풍력 발전기가 스무 대 가량 설치되어 있다. 하얀색의 풍차 그 거대한 바람개비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 지역은 ‘바람의 고장’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분다. 10분간 드라이한 머리가 10초 만에 망가지곤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 돈키호테의 심정으로 이곳을 찾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발전기 중 유독 하나만 돌아가지 않는다. 무슨 영문인지 주변 발전기는 모두 힘차게 움직이는데, 바람도 세게 부는데, 하나의 발전기만 멈춰 있다. 머릿속 생각이 혼잣말로 나온다.
“쟤는 왜 안 돌아가지? 나인가?”

2. 서귀포감귤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감귤류를 파는 과일 가게에 ‘신혼부부 할인매장’이라고 크게 붙어 있다. 한숨이 새어 나온다. 제주 신혼여행이 철 지난 이야기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안 그래도 달콤할 텐데 굳이 저렇게 할인까지 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혼자 사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데 어디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3. 시장에 가면 잃어버린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다. 무엇을 특별히 사지 않아도 다채로운 볼거리를 마주하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 명절에 느끼는 풍성함과 북적거림, 시장은 일상의 명절 같은 것이고 스스로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끝자리가 4와 9인 날에 열리는 오일장. 한림민속오일시장은 내가 수차례 다녀온 서귀포올레시장이나 제주 동문시장보다 규모가 작다. 하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시장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고, 실속 있고, 정돈된 느낌이다. 한 마디로 있을 건 다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치열한 삶이 있다. 입맛이 없을 때 매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작은 희망을 맛본다. 그렇게 풀지 못한 숙제에 다가선다. 삶과 인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시장에 가면 꼭 떡볶이를 먹게 되는가.

4. 눈으로 마시는 파란색 칵테일. 세화해변과 더불어 금능해변은 나의 바다다. 가장 자주 찾는 해수욕장이다. 끝이 없는 바다를 보며 깨닫는다. 인생은 밀물과 썰물의 이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고, 물 빠질 때 빠져 나와야 한다. 세속적인 생각과 단순한 진리는 맞닿아 있다.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금능해변의 석양은 아름답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인생이 덧없게, 사람이 작게 느껴진다. 지는 해를 보며 생각한다.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세 번째 칼럼입니다. 순한 맛의 코미디로 가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lhUv3oDDGJ000&pageIndex=1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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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2/14 13:47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다른 삶이 있을 뿐
사람은 모두 다르다. 겉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제주로 이주한 것을 두고,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 편한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왜 제주로 내려갔냐고 말한다. 그것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로. 누군가에게 나는 이성적인 판단이 결여된 이해 못할 사람일 뿐이다.

반면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 이른 퇴사와 제주 이주, 소설가로서의 삶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 통장 잔고를 보면 해당 발언을 즉시 철회하겠지만, 차치하고,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제주의 삶이 그만큼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다. 나 스스로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한 삶이 생각대로 흘러갈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른 삶이 있을 뿐이라는 것. 사람이 모두 다른 만큼, 다른 삶이 있을 뿐이라는 것.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틀린 삶은 없다.

제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일단 개인주의 성향인 내가 넉살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지금은 이웃 할머니 집에 먼저 찾아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옆집 아저씨에게는 먹거리들을 나눠드린다. 제주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마을 이장님과도 통역 없이 소통하며 자문을 구한다.

근검절약은 차원이 달라졌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하고 퇴사한 내가 생존하려면 아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제주의 겨울은 생각 외로 춥다. 바람이 심하고 습도도 높다. 남쪽의 따스함을 만끽하며 살 줄 알았는데 내 몸은 늘 냉랭한 상태다. 분명 제주인데 밤에는 강원도 전방 지역보다 더 춥다. 보일러를 마음껏 가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주의 가스비는 가히 공포에 가깝다. 체감적으로 수도권 도시가스보다 2~3배 비싸다. 얼어 죽든지, 맘 놓고 때서 죽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무엇보다 먹는 것이 달라졌다.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는다. 또 흑돼지 구이와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던 내가, 제주 돼지의 사육 실태와 악취 문제를 목도한 이후로는 돼지를 먹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엄청난 변화다. 생명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제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제주에 온 이후로 시계를 잘 보지 않는다. 날짜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시에 있을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내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더 크게 변화하고 싶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앞에 올바른 삶이나 틀린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있을 뿐이라는 것.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두 번째 칼럼입니다. 사는 건 즐겁고 또 괴롭습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knr2KIDDGJ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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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2/14 13:20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마흔셋, 대학 졸업
정기 차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냥 지나치던 일상적인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마흔셋에 대학을 졸업했다. 나이만 놓고 보면 남들보다 늦었다고, 어쩌면 빨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누구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와 장면, 공간이 있다. 내게는 대학이 그렇다. 그것은 시절이면서 장소이고, 공식적인 기록이면서 개별적인 추억이다. 대놓고 자랑할 만한 명문대를 입학한 것도 아니고, 첫사랑과 이어진 것도 아니고,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대학을 빼놓고 내 삶을 말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내가 대학과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을 포함한 진로상담을 하며 교수님이 물었다.
“우 군, 혹시 학문에 뜻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 자네 뜻을 존중하네. 졸업 잘하게.”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학점은 알파벳에 불과한 것일까?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주로 강의실 밖에서 진리를 탐구하던 나는, 이타주의를 몸소 실천하며 학우들의 장학금 수혜를 돕는 디딤돌이 됐다. 나보다 잘나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오만함을 버리고 낮은 자세와 겸손함을 배웠다. 그저 학사경고 기준보다 높은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전히 대학을 빼놓고 내 삶을 말할 수 없다. 그런 내가 대학 교직원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기자를 준비하던 나는, 일간지에 필기시험 보는 사진이 실리기도 했던 나는, 시험 과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응시한 대학에 얼떨결에 붙고 말았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 15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대학원을 다닐 때는, 일하는 곳도 대학, 사는 곳도 대학(기숙사), 공부하는 곳도 대학이었다. 삶 자체가 대학이었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마흔셋에 대학을 졸업했다. 두 번째 대학 졸업. 교직원을 그만두었다. 실상을 알고 보면 남들보다 빨랐다고, 어쩌면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이를 떠나 나는 처음부터 대학과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했다. 제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주 시골 마을. 제주행 선박에 차를 싣기 위해 완도로 출발했다.

그냥 지나치던 일상적인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학교 후문 주차 게이트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나를 환송했다.

정기 차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첫 번째 칼럼입니다. 2022년 봄까지 잠시 연재합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jtF5ED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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