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7 14:45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를 생각한다. 제주에서 시작한다. 도시를 떠나 제주 시골 마을에 오기까지 서른 번 이상 제주를 여행했다.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찾은 이유를 떠올린다. 또 무엇 때문에 제주에서 기한 없는 여행을 시작한 것인지 자문한다.

여행지로써 제주를 하나의 관점으로 조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하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면 제주는 낙원에 가깝고, 강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돼 하염없이 공항에 갇혀 있다 보면 제주는 고립과 단절의 섬이다. 물가를 생각하면 잠시 머물 만한 관광지에 불과하고, 거듭해서 제주를 찾는 사람이 많은 걸 감안하면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상반된 측면이 존재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그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제주 부분은 복잡다단하다. 혹자는 내가 전원에 사는 것을 낭만과 감성의 차원에서 바라보는데 현실은 엄혹하다. 이른 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잡초들과 시골 냄새,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벌레들을 보면 다가올 여름이 무척 기대된다.  

여행의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하나의 틀로 규정할 수 없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자연에 동화되는 것,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거나 맛집을 탐방하는 것, 생각을 비우며 걷는 것, 많은 사진을 남기는 것, 숙소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그 무엇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내게는 사람이다. 한없이 추상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 사람이 여행의 이유다. 그것은 단순히 커플 여행이나 단체 관광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여행도 결국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며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천혜의 자연으로 유명한 섬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인종 차별에 가까운 불친절을 경험하며 대자연의 감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안 좋은 기억만 뇌리에 남았다. 반대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도리어 여행이 고양되고 삶의 태도가 크게 전환되기도 했다.  

제주를 그렇게 여행한 이유가, 아직 제주인 이유가 선명해지고 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고,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의 속성이듯, 서울에서보다 제주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단지 내가 제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인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행에 나라는 존재가 크고 작은 이유가 되고 있다. 여행 도중에 잠시 들르거나 아예 내가 사는 곳을 거점으로 여행을 오기도 한다. 십수 년간 연락이 끊겼던 동기도 제주에서 재회했다. 먼 곳까지 찾아와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발견한다. 다시금 여행의 이유를 재확인한다.

나는 기꺼이 지인들의 제주 여행 가이드가 된다.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여행 온 친구와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몇 년 전 그때처럼 백사장을 함께 거닐었다. 친구는 여전히 이곳의 풍경이 좋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너와 함께 있어서 더 좋다는 말은 빼고 말했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다섯 번째 칼럼입니다. 여행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nGRRr8DDGJ000&pageIndex=1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51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22/04/11 17:38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여행하는 삶에 관하여
여행하는 삶에 관하여라고 썼지만 어쩌면 그것은 여행 같은 삶에 관하여다. 내게 제주는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라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이다. 무엇이 맞는 것이든 하나의 명제만큼은 변함이 없다. 삶은 여행이다.

가끔씩 내가 사는 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잊는다. 바로 앞에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과 숲을 두고도 누리지 못한다.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반경 500미터 내에 이렇다 할 상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선 모든 게 일이고 도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서 치열하게 사는 후배가 전화로 사는 법을 말해준다.

살아가니까 살아지네요.

여행하는 삶을 살려면 먼저 여행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행을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면 여행하는 삶은 누구나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도시가 여행지인 것처럼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에 실제로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면 이해가 더해질 것이다.

나는 일상의 여행을 좋아하고 스치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무 옷이나 입고 밖을 나서도 제주의 배경은 나를 여행자로 만든다. 유명한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봄날의 제주는 어디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달력 사진이다. 차로 서귀포에 있는 대정오일시장을 향한다. 도로를 따라 유채꽃과 벚꽃, 각양각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봄을 잊지 않고 깨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만큼 신비로운 순간을 마주한다. 마치 누가 나를 위해 교통 신호를 통제한 듯 멀리서 빨간색이었던 신호가 때를 맞춰 파란색으로 바뀐다. 단 한 번의 막힘없이 길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얼굴에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친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어느덧 대정오일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끝자리가 1과 6인 날에 열리는 오일장. 오늘은 분명히 1일인데도 시장에 정적이 감돈다. 맑은 봄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인근에서 쓰레기를 줍는 노인을 발견하고 왜 시장이 열리지 않는지를 물었다. 노인이 어려운 질문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한다. 어제가 31일이었다고. 31일에 장이 열릴 때는 1일에는 열리지 않는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아무것도 사지 못한 시장에서 깨닫는다. 여행은 그런 것이고 삶은 이런 것이다. 시장 주변 주택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꽃밭을 발견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네 번째 칼럼입니다. 계속 표류하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ma1mQIDDGJ000&pageIndex=1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21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22/04/02 17:31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 제주 단상
1. 제주 신창풍차해안도로 주변에는 풍력 발전기가 스무 대 가량 설치되어 있다. 하얀색의 풍차 그 거대한 바람개비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 지역은 ‘바람의 고장’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분다. 10분간 드라이한 머리가 10초 만에 망가지곤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 돈키호테의 심정으로 이곳을 찾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발전기 중 유독 하나만 돌아가지 않는다. 무슨 영문인지 주변 발전기는 모두 힘차게 움직이는데, 바람도 세게 부는데, 하나의 발전기만 멈춰 있다. 머릿속 생각이 혼잣말로 나온다.
“쟤는 왜 안 돌아가지? 나인가?”

2. 서귀포감귤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감귤류를 파는 과일 가게에 ‘신혼부부 할인매장’이라고 크게 붙어 있다. 한숨이 새어 나온다. 제주 신혼여행이 철 지난 이야기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안 그래도 달콤할 텐데 굳이 저렇게 할인까지 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혼자 사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데 어디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3. 시장에 가면 잃어버린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다. 무엇을 특별히 사지 않아도 다채로운 볼거리를 마주하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 명절에 느끼는 풍성함과 북적거림, 시장은 일상의 명절 같은 것이고 스스로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끝자리가 4와 9인 날에 열리는 오일장. 한림민속오일시장은 내가 수차례 다녀온 서귀포올레시장이나 제주 동문시장보다 규모가 작다. 하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시장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고, 실속 있고, 정돈된 느낌이다. 한 마디로 있을 건 다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치열한 삶이 있다. 입맛이 없을 때 매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작은 희망을 맛본다. 그렇게 풀지 못한 숙제에 다가선다. 삶과 인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시장에 가면 꼭 떡볶이를 먹게 되는가.

4. 눈으로 마시는 파란색 칵테일. 세화해변과 더불어 금능해변은 나의 바다다. 가장 자주 찾는 해수욕장이다. 끝이 없는 바다를 보며 깨닫는다. 인생은 밀물과 썰물의 이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고, 물 빠질 때 빠져 나와야 한다. 세속적인 생각과 단순한 진리는 맞닿아 있다.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금능해변의 석양은 아름답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인생이 덧없게, 사람이 작게 느껴진다. 지는 해를 보며 생각한다.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


우희덕_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그 세 번째 칼럼입니다. 순한 맛의 코미디로 가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lhUv3oDDGJ000&pageIndex=1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813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1  2  3  4  5  6  7  8  9 ...   116    
 
        
분류 전체보기
일상다반사
감성코드
호주 이야기
뉴질랜드 이야기
말레이시아 이야기
일본 이야기
추억의 사진·영상
 
 
  Total 500888  Today 78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