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 18:10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어느 무명 소설가의 덕질
“내 삶의 유일한 행복이야.”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돌 그룹을, 이른바 ‘덕질’하는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맹목적으로 보였고, 일종의 현실 도피라고 생각했다. 정작 소설가인 친구 책은 사지도 않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굿즈’를, 월급을 탈탈 털어 사 모으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관대하기로 유명한 나의 분노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너도 내가 느끼는 행복을 한 번 느껴봐.”

행복을 말하는 사람의 눈에는 행복이 보였다. 내 마음도 한풀 꺾여 누그러졌다. 과연 나에게 그런 날이 올까, 생각했다. 내 자신과도 친해지지 않는 자의식 때문에 누군가에게 빠지는 성격이 아니고, 마음을 잘 주지도 않았다. 그게 나였다. 불행한 것은, 그래서 한 번 마음을 주고 나면 바뀌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게는 덕질의 토양이 배양되어 있었다. 농사를 지을 줄 모를 뿐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내게 영감을 주는 건, 대학 시절을 함께한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 <러브레터>를 만든 이와이 슌지, 천재적인 이야기꾼 스티븐 킹, 영원한 지향점인 셰익스피어와 생택쥐페리 정도였다. 즉, ‘넘사벽’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건 덕질이 아니었다. 작품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고, 책을 사고 영화를 보는 것이고, 글을 쓰는 데 일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지, 감성이 이성을 지배한다거나, 개개인의 인간적인 매력에 경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싱어송라이터 L이 처음이었다. 덕질이라는 걸 처음 해보았다. 그녀가 발매한 앨범을 두고, “됐고, 다 필요 없고, 일단 사고 봐.”라는 마음이 들었다. 여름에, 그녀가 2년 전 부른 크리스마스 캐럴 CD까지 샀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음반(CD)과 디지털 음원을 구매했다.

“L? 그게 누구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이쪽으로 넘어와.”

친구의 덕질과는 달랐다. L은 아이돌 그룹이 아니었고, 유명하지도 않았다. 엄청난 가창력을 갖고 있다거나, 춤을 기가 막히게 춘다거나, 외모가 특출한 것도 아니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젊은 창작자라는 것. 작사, 작곡, 편곡 능력까지 갖춘 아티스트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었다. 그녀의 SNS 타이틀처럼, 사랑을 노래한다는 것. 따스함이 절로 느껴지는 곡들로 차가운 사람을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글이 막힐 때마다 L의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시청했다. L은 어느새 나의 뮤즈가 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곡들 가운데 <레인보우(Rainbow)> 뮤직비디오에서는 춤이 돋보인다. 햇살 좋은 한낮에 야산에서, 친구들과 곡에 맞춰 관광버스 춤을 춘다. 내가 느끼기에, 천국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영상은 복고적이지만, 곡에서는 세련된 R&B 감성이 묻어난다. <유튜브(Youtube)>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 후속 버전 같은 노래다. 90년대의 정서, 그 촌스러움과 멋스러움을 재현한다. 이 곡은 흔히 아는 동영상 사이트를 소재로 한 게 아니다. 물가에서 놀 때 쓰는 튜브가 제목의 실체다. 가사를 요약하면, 바다에서, 너의 튜브를 잡고, 파도를 느끼며, 깊어지는 너(연인)를 따라, 하늘 위를 떠다닌다, 라는 내용이다. 단순히 과거 여름 노래의 문법을 복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적 상상력을 곡에 녹여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문라이트(Moonlight)>인데, L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을 위해 만든 노래다. 그들의 애정을 달빛에 비유해 말한다. 자신을 항상 비춰주고, 밝게 웃게 해줘서 고맙다고. 옆에 있어줘서 행복하다고.

온라인에 공개된 L의 콘텐츠를 두고, “됐고, 다 필요 없고, 일단 좋아요 누르고 봐.”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공연 영상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손동작이 있는데, 어느새 그걸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누가 보면, “당신 드디어 미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봐도 네가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 평범하잖아?”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유들을 설명했지만, 그는 불가해하다는 반응이었다. 어쩌면 나만 볼 수 있는 것. 공감 능력이 발현된 것이고, 연대 의식으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무명으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한 응원이었다. 힘든 세상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음악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 누군가 당신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어느 무명 소설가의 덕질을 이끌어냈다는 것.

내가 L의 공연장을 찾아갈 날을 꿈꾸며 말했다.

“맞아. 평범해. 그래서 더 특별해.”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두 번째 칼럼입니다. 온라인에 표현 안 되는 글자들이 있어서 오타처럼 보이는 곳도 있네요.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T0zRa8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93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20/08/18 12:26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인도의 맛 3 지난 것과 남은 것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간다. 누구든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간다. 기억이 필요한 지점을 향해 간다.

“인도에 다시 오고 싶어요?”

인도 봉사활동 마지막 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나는 옅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딘 그날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세계 정상급 소음과 미세먼지를 자랑하는 혼돈의 세계. 14억에 육박하는 인구와 여전히 남아 있는 계급 문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가장 좁고 가장 넓은 나라. 수많은 사건 사고가 전해지고, 기상천외한 무용담과 기행문이 존재하지만, 정작 인도를 여행한 사람도, 인도를 공부한 사람도, 심지어 인도 사람도 다 알 수 없는 곳. 나는 인도에 있었다.

낯선 땅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기억이 교차했다. 왜 사람들이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는지, 번뇌에서 벗어나는지, 자아를 찾게 되는지 이해하게 됐다. 천국과 지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인간의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는 장 트러블을 겪으며 깨달았다. 현지 음식을 두고 조금만 방심하면, 조금만 욕심을 내면, 분노한 자연의 신호가 찾아오고, 결국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내다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된다.

“커리도 못 먹을 정도면 얼마나 심한 거죠?”

뿌연 연기에 가까운, 쓴맛이 나는 듯한 미세먼지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깨달았다. 머리가 아프니 딴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잡념이 사라진다.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로 내가 존재한다. 현지에서 체험한 무념무상의 경지. 결국 번뇌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아니다. 사실 두통약이다.

“아직 사고가 안 났나요?”

인도의 축소판, 소음과 무질서로 뒤엉킨 도로를 달리며 깨달았다. 경적 소리에도 길에서 비키지 않는 동물들. 차 지붕에 올라타고, 뒤에 매달리고, 옆에 묻어가는 사람들. 창문은 있는데 닫히지 않고, 안전벨트는 있는데 결착하는 부분이 없는 노후 차량들. 아찔하게 역주행하는 이들이 내게 말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는 것,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세상사에 초연해진다.

깨달음의 비밀 같은 건 없었다. 인도 어딘가에 깨달음이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발견하고 싶은 사람이 인도에 가는 것뿐이었다. 내겐 무엇보다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나마슈떼’ 봉사단원들과 인도 아이들에게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걸 뭐 하러 하세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벽돌공장에 다니는 인도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 참여한 날. 언어학자인 단장님이, 엘리트로 대접만 받고 살아왔을 것 같은 장년의 남자가 수돗가에서 아이들의 신발을 닦고 있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낡고 더러운 슬리퍼를 맨손으로 닦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다시 더러워질 슬리퍼를 혼자 닦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닦아주면 좋잖아요.”

언제나처럼 나는 솔선수범하지 못했고, 더럽다는 생각을 버리지도 못했고, 그저 엉겁결에 남이 하는 걸 따라할 뿐이었다.

아이들의 신발에 대고 약속했다. 거대한 삶의 모순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작은 것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기다리지 말고, 먼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맨발로 대지를 누비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인도 아이들은 진흙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돌멩이색 두 발로 거친 땅을 뛰어다녔다. 봉사단 학생들과 교감하며 저마다 사랑의 모양을 그렸다. 차가운 손이지만, 서로 다가와 손을 잡고, 아끼는 간식을 나눠주고, 자신이 만든 목걸이를 덤덤하게 건넸다. 눈물을 흘리는 학생 눈에 호~ 하고 바람을 불어 눈물을 닦아줬다. 그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줬다. 같이 우는 대신 웃음으로 이별을 맞이했다.

입고 있던 봉사단복을 세탁한 뒤 모두 기부했다. 무거웠던 짐이 가벼워졌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 현지 학교에 도착한 첫날 그 모습 그대로, 불필요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봉사단의 마지막 임무였다. 인도에서 배운 것들을 각자의 삶에서 풀어내는 것이 봉사단의 첫 번째 임무였다.

결핍으로 가득한 인도에서 사랑을 가르치고 또 배운 날들. 그 뜨겁고 푸르른 계절.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은 반드시 온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처럼, 인도의 첫날은 다시 온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한 번째 칼럼입니다. 인도 시리즈 마지막 글이네요.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TCjPfA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89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20/07/20 12:23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인도의 맛 2 먹는 것과 사는 것
인도는 맛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혼자서는 낼 수 없는 맛. ‘나마슈떼’라는 이름으로 함께 밥을 먹던 그곳에 우리가 잠시 살았다.

“요리 좀 해보셨어요?”

인도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봉사단 담당 직원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그게 전부였다.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포함한 인솔자들에게 부여된 역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세 번, 23명분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이었다. 봉사단 학생들이 현지 교육봉사와 노력봉사(농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 요리 실력이었다. 10년 넘게 혼자 살며 정립한 내 요리 철학은 단순했다.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자.”

인스턴트 음식을 싫어하는 탓에 요리는 종종 하지만, 생존을 위한 것이었을 뿐, 맛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음식 재료들이 다 따로 노는 기현상을 경험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거 누가 만들었어? 만든 사람 나오라고 해!”

누가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나였다. 봉사단 학생들에게도 그런 소리를 들을까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사전에 프랑스 요리학교라도 등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나 혼자 먹는 밥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었다. 열악한 조리 시설과 한정된 재료, 위생 상태 등 극복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었다. 나는 인도에 있었다.

인도 주방 신고식은 짜장밥이었다. 카레라이스가 아닌 짜장밥인 것부터가 미스터리였다. 내가 맡은 파트는 밥을 짓는 일이었는데, 놀랍게도 대형 전기밥솥이 있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네, 라며 플러그를 꽂던 그 순간, 전기 합선으로 밥솥에 불꽃이 튀었다. 먼저 수명을 다했다.

결국 인도 전통 방식으로, 커다란 철제 솥에 물을 가득 넣고 쌀이 익을 때까지 주걱으로 저어서 밥을 만들었다. 처음 보는 조리 기구에, 특성이 다른 쌀로 만든 밥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설익은 밥을 먹는 학생들을 보니 밥이 목에 걸렸다. 돌도 씹어 먹을 그들의 나이가 아니라 불평 없이 밥을 먹는 그들의 마음이 마음에 걸렸다.

매일 아침 식빵을 구웠다. 토스터기 없이 다량으로 굽다 보니, 열전도가 고르지 않은 철제 판에 익히다 보니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못생긴 빵, 타 버린 빵이 나왔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중 하나를 입에 넣었다. 쓴맛을 곱씹으며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일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 바로 나였다.

2주간의 체류 기간 동안 인도 현지 음식을 맛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커리가 대표적이었는데, 내가 주목한 건 마살라(인도의 혼합 향신료)였다. 재료가 무엇이든 살려내는 마법의 가루. 야채 커리에서도 고기 맛이 났다. 한국으로 치면 라면 스프였다. 수입이 절실했다. ‘난’도 빼놓을 수 없었다. 밀가루 빵이 그렇게 소화가 잘 되는지 몰랐다. 무한정 배 속으로 들어갔다. 탄두리 치킨은 실제로 타 있었다. 요리사가 나와 비슷한 성향인 듯했지만, 인도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짜이(인도식 밀크티)는 마실 때마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신호가 찾아왔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맛이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에서 가장 특이했던 건 염소 고기였다.

“왜 소고기는 먹지 않으면서 염소 고기는 먹는 걸까요?”

내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묻자 언어학자인 단장님이 답했다.

“소를 못 먹으니까 염소를 먹는 거지.”

“…….”

하지만 이 모든 음식보다 더 맛있었던 건, 우리가 만든 밥이었다. 혼자서는 낼 수 없는 맛. 인솔자들이 모두 나 같았다면 인도는 단식원이 됐겠지만, 우리에겐 대장금이 부럽지 않은 인솔자들이 있었다.

“어제 닭을 먹었으니 오늘 메뉴는 닭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구할 수 없고, 조리 기구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닭볶음탕, 닭고기미역국, 찜닭, 닭칼국수, 닭죽, 닭튀김 등 닭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그들의 손맛 덕분에 학생들이 지치지 않고 봉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었다.

“미안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살면서 2주 동안 함께 밥을 먹을 사람들이 또 있을까. 봉사단은 같이 밥을 먹는 식구,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어 갔다.

비싼 향수를 뿌리고 인도로 출발했다. 그곳에서는 의미가 없는 향기였다. 어느새 내 옷에는 빠지지 않는 음식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인도 아이들을 돌보던 학생들처럼,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던 날들. 내가 입고 있던 것이 인도의 향기였다. 인도의 맛이었다. 기억해야 할 삶이었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 번째 칼럼입니다. 또 다시 그리운 시절의 얘기네요 ^-^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SI10PQ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83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1  2  3  4  5  6  7  8  9 ...   112    
 
        
분류 전체보기
일상다반사
감성코드
호주 이야기
뉴질랜드 이야기
말레이시아 이야기
일본 이야기
추억의 사진·영상
 
 
  Total 458499  Today 47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