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30 17:29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건강 중독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간판은 해장국이라고 돼 있지만, 해장국은 팔지 않고 닭꼬치를 파는 곳.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약을 파는 사람들을 만났다.

“됐고. 이건 우리 나이 때 무조건 챙겨 먹어야 돼!”

대학원 동기들과 2년 만의 만남. 처음에는 모두 1년 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이내 정신없이 살아온 죄가 더해져 1년이 늘어났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눈에 띄게 성장해가고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에 할증이 붙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래전 추억과 근황을 풀어내는 것도 잠시, 40대 초중반이 된 동기들은 30대 시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1교시와 2교시 수업을 연이어 듣고, 3교시라고 부르던 뒤풀이까지 군말 없이 소화하던 그들이었다.

“항산화제. 젊어지는 약이라고!”

알파벳 순서대로 비타민을 다 챙겨 먹는 남자 동기 비타민 씨가 말했다.
그가 재차 언급한 건 이름도 생소한 아사이베리였다. 효과가 확실하다는 말과 함께 구매 정보도 제공했다. 요즘은 직구가 대세라고 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입을 보면 효과가 확실하다는 게 빈말이 아닌 듯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얼굴은 정확히 2년이 흘러 있었다.

“그래 맞아. 이젠 이것저것 챙겨 먹지 않으면 수저 들기도 힘들어.”

음주 전도사에서 건강 전도사로 거듭난 여자 동기 해독 주스가 거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식사 대용으로 녹즙을 자주 마신다고 했다. 해독 효과가 있는 케일과 위에 좋은 양배추를 번갈아가면서. 때론 섞어서. 내키는 대로.

“아, 빠뜨릴 뻔했네. 이게 진짜야. 신이 내린 선물!”

밀크시슬, 클로렐라, 스쿠알렌, 오메가3, 단백질 셰이크… 그녀의 입에서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건강 관련 식품이 나열됐는데, 그 끝에 마누카꿀이 있었다. 매일 아침 공복에 한 스푼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다들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녀의 얘기에 빨려 들어가던 찰나, 그녀가 사이다병에 수저를 가져가다가 흠칫했다. 병따개가 있음에도 아직 과거의 습관이 남아 있었다. 2년 동안 매일 새롭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마술사 유리 겔라처럼 숟가락을 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수저를 번쩍 들기 위해 그녀가 말한 모든 것을 챙겨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너희들 몸 생각 안 하는구나.”

또 다른 동기, 몸의 수호자가 말했다. 그의 싸늘한 말투에 달아오르던 장내 분위기가 순간 차분해졌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동기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 동기들 가운데 유일했다. 부정확한 건강 정보로 관련 제품들이 오남용되는 행태를 지적해줄 사람은.
그가 주저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도 한창인 줄 알아? 부실하게 그걸로 되겠어?”
“….”

건강은 이미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는 마약 빼고 약이란 약은 다 먹는 듯했다. 밥이 보약이 아니라 보약이 밥이었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먹지도 않고 듣기만 했는데 속이 쓰리고 울렁거렸다.
그가 할 말을 잃은 동기들에게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그에게 건강은 지향점이라기보다는 이상향에 가까웠다. 100세 시대라고 했다. 건강이 최고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라고 했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마땅히 건강의 주인이어야 하는데도 건강의 인질이 된 것은 아닐까. 건강을 앞세워 불안을 파는 사람들의 돈줄이자 임상실험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몸에 좋다는 걸 먹지 않으면 무언가 결핍이 된 듯 불안하고,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과다 복용과 장기 복용도 마다하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나 자가 진단을 근거로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 관련 제품을 권하는 것.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데 닿을 수 없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는 것.
건강 중독은 건강이 아니라 중독이었다.

“아, 그런데 건강염려증을 없애주는 약은 없나?”

동기들과 헤어지는 길에 비타민 씨가 물었다. 그러자 몸의 수호자가 말했다.

“그러게. 약을 그만 먹게 해주는 약은 없을까?”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코미디 형식의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LmuvGM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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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2/27 22:56
     태양을 찾기 위해 달리다

[@ 강경 옥녀봉]

이 사진은 오랜 기간 내 정서를 대변하고, 지배한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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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2/02 16:05
     화성 탐사선과 미세먼지 - 우희덕(소설가)
“그거 그냥 버리세요.” 친환경을 표방하는 모 협동조합 매장에 제품 빈병을 가져다주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빈병을 재활용한다기에 그간 모아놓은 병들을 세척해서 갖고 갔는데, 병에 붙어 있는 제품 스티커 때문에 이대로는 재활용할 수 없다고 했다. 가내수공업으로 배운 기술을 재활용해야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업을 도운 경험을 살려 절차탁마의 심정으로 손톱을 갈아가며 현장에서 가까스로 스티커를 떼어냈다.

“그거 그냥 버리세요.” 내 귀에 앵무새가 살고 있나. 다시 돌아온 건 칭찬 대신 친절한 절망. 이번에는 스티커를 떼어낸 곳에 접착제 흔적이 남아 있어 여전히 재활용이 어렵다고 했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이유라면 애초에 잘 떨어지지도 않는 접착제는 왜 쓴 것이며, 재활용은 왜 한다고 했는가. 협동조합 측에서 추가로 세척작업을 하면 재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 오히려 버리기를 독려했다. 쉬운 방법이었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나만 아니면 돼, 라고 말하지만,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의의 폐기는 모두에게 일어나고 만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대부분은 재활용 되는 줄 알았다. 무지의 소치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배신이기도 하다. 재활용 쓰레기는 상당 부분 일반 쓰레기와 함께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국가별로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과 비율은 다르지만, 일상에서 흔히 보는 종이컵, 특히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은 10%가 채 안 된다. 그렇다면 그 많던 플라스틱은 누가 다 먹었을까. 결국 사람이 먹었다. 사람은 플라스틱을 버렸지만, 플라스틱은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

사소해 보였던 문제가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버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소각과 매립은 쓰레기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쓰레기의 형태만을 변환할 뿐이다. 그것은 다시 대지로 환원된다. 미세플라스틱, 미세먼지, 미생물(바이러스)의 전면적 대두는 우리가 쓰레기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매일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재활용 쓰레기 문제는 서로 다른 층위의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이야기다. 밖에서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공기청정기를 상시적으로 쓰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화력발전소를 가동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마스크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다.

작은 것들의 역습을 막아 내기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너무 크다. 그래서일까. 지구를 대체할 곳을 찾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이유가. 생각한다. 우주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의 기술을 보유한 인류가, 왜 지구의 모순 해결을 주저하는지. 왜 죽어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방치하는지. 단지 비용 문제라면 우주 개발도 만만치 않은 것 아닌가.

얼마 전 미국의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가 화성에 안착했다. 탐사선이 지구로 보내온 첫 번째 사진은 공교롭게도 렌즈에 먼지가 잔뜩 낀 사진이었다. 우주에 탐사선을 보낼 기술이 있어도 렌즈에 먼지가 끼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지구에서는 고성능 카메라 없이도 눈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탐사선이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복귀했을 때, 그것은 고철이 될까, 역사적 사료가 될까. 재활용은 중요하다.


정부 정책정보지에 칼럼을 하나 요청받아 써서 보냈는데, 왜 제목이 임의대로 수정된 건지......<화성 탐사선과 미세먼지>가 왜 <재활용 선의 믿음의 배신>으로?? 그밖에도 할 말은 많지만 참아내는 수련도 필요하겠지요 ㅠㅠ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01JAyrp4DGJMP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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