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6 17:34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할매와 밥상
또 ‘먹방’인가.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진 프로그램 장르가 먹는 방송, 즉 ‘먹방’이었다. 자극적인 메뉴 선정과 과도한 음식의 양, 자의적인 평가로 소개되는 맛집, 물불 안 가리는 상업성에 질려 버렸다. 무엇보다 배를 채우는 과정만 있을 뿐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없었다.

유튜브에 <할매와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때늦은 맛집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동어 반복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시청하지 않았다. 라디오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조금은 조용하게 맛집을 즐길 수 있게 했던, 신뢰하는 여행 작가마저 유튜버 대열에 뛰어드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뭐든지 시각화되지 않으면 실체를 믿을 수 없고, 주체로서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건 아닌지 씁쓸했다.

시간은 흐르고 풍경은 바뀌었다.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면 누구나 목격하게 되는 장면들. 문득 잊고 있던 프로그램이 떠오른 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던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였다. 그곳의 주인 할머니를 통해 할매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마음에 꽂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맛집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다시 맛집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할매와 밥상>은 기본적으로 노포를 다룬다.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오래된 식당. 시간을 이기는 맛의 비밀을. 한때는 그런 식당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에 혼자서 전국 이곳저곳을 탐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밥 이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현실 세계는 딴판이었다.

내가 한 식당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면서 물었다.

“계십니까? 지금 밥 됩니까?”

“어떤 무식한 놈이 이른 아침부터 밥을 달라고 해!”

내가 주인 할머니 앞에 얼굴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게 접니다.”

“….”

정감이 넘치는 욕을 듣거나 감칠맛 나는 눈칫밥을 먹는 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1인분은 안 된다는 식당도 꽤 있었는데, 그런 경우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이용해야 했다. 어렵사리 밥상은 받았으나 찬밥 대우를 받은 적도 있었다.

“제가 사실 소설가인데 몇 가지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됐고, 빨리 먹고 나가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여기 벽에 사인은 필요 없으시죠?”

“됐으니까, 밥값만 내고 가.”

단순히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사먹는 게 아닌, 사람의 마음을 산다는 것. 나이 드신 분들과 서로 공감하고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그래서 노포를 소재로 한 <할매와 밥상>이 내게는 다르게 보인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 재개발로 원주민이 떠난 자리에 유일하게 남은 식당, 절대 방송 출연은 안 하는 만둣집, 간판 없는 가게와 전 세계에 하나뿐인 메뉴를 파는 곳까지. 그런 곳에 직접 찾아가 주인의 개인사와 식당의 발자취에 대해 격의 없이 대화하는데,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머니, 앞으로 30년은 더 하셔야죠?”

“아이고, 30년이면 나 없어져!”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소설보다 힘이 세고,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더 희극적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무겁지 않고, 인위적인 연출이 없어서 마음에 더 와 닿는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노포의 매력, 찾고 있던 맛이 저런 게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걸 이어 붙이면 하나의 기록이 된다. 역사가 된다. <할매와 밥상>이 상업성의 초월이나 숭고함을 기치로 내건 방송은 아니지만, 이런 소재의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닐까. 오래된 맛을 지키는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참는 것, 맛집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그래서 제작진도 조심스러워 한다. 노포를 더 오래도록 지키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찾지 않는 것이다. 방송은 방송으로만 즐기는 것이다.

“이거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매회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 나오는 질문에 식당 주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는 데까지, 힘닿는 데까지 해야지.”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언젠가 드문드문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외지고 낡은 식당에서 따뜻한 밥 한 공기 먹을 수 있기를. 깊은 인생의 맛을 발견할 수 있기를.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다섯 번째 칼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방송에 대해 써보았습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V971g4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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