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8 12:26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인도의 맛 3 지난 것과 남은 것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간다. 누구든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간다. 기억이 필요한 지점을 향해 간다.

“인도에 다시 오고 싶어요?”

인도 봉사활동 마지막 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나는 옅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딘 그날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세계 정상급 소음과 미세먼지를 자랑하는 혼돈의 세계. 14억에 육박하는 인구와 여전히 남아 있는 계급 문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가장 좁고 가장 넓은 나라. 수많은 사건 사고가 전해지고, 기상천외한 무용담과 기행문이 존재하지만, 정작 인도를 여행한 사람도, 인도를 공부한 사람도, 심지어 인도 사람도 다 알 수 없는 곳. 나는 인도에 있었다.

낯선 땅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기억이 교차했다. 왜 사람들이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는지, 번뇌에서 벗어나는지, 자아를 찾게 되는지 이해하게 됐다. 천국과 지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인간의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는 장 트러블을 겪으며 깨달았다. 현지 음식을 두고 조금만 방심하면, 조금만 욕심을 내면, 분노한 자연의 신호가 찾아오고, 결국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내다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된다.

“커리도 못 먹을 정도면 얼마나 심한 거죠?”

뿌연 연기에 가까운, 쓴맛이 나는 듯한 미세먼지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깨달았다. 머리가 아프니 딴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잡념이 사라진다.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로 내가 존재한다. 현지에서 체험한 무념무상의 경지. 결국 번뇌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아니다. 사실 두통약이다.

“아직 사고가 안 났나요?”

인도의 축소판, 소음과 무질서로 뒤엉킨 도로를 달리며 깨달았다. 경적 소리에도 길에서 비키지 않는 동물들. 차 지붕에 올라타고, 뒤에 매달리고, 옆에 묻어가는 사람들. 창문은 있는데 닫히지 않고, 안전벨트는 있는데 결착하는 부분이 없는 노후 차량들. 아찔하게 역주행하는 이들이 내게 말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는 것,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세상사에 초연해진다.

깨달음의 비밀 같은 건 없었다. 인도 어딘가에 깨달음이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발견하고 싶은 사람이 인도에 가는 것뿐이었다. 내겐 무엇보다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나마슈떼’ 봉사단원들과 인도 아이들에게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걸 뭐 하러 하세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벽돌공장에 다니는 인도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 참여한 날. 언어학자인 단장님이, 엘리트로 대접만 받고 살아왔을 것 같은 장년의 남자가 수돗가에서 아이들의 신발을 닦고 있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낡고 더러운 슬리퍼를 맨손으로 닦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다시 더러워질 슬리퍼를 혼자 닦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닦아주면 좋잖아요.”

언제나처럼 나는 솔선수범하지 못했고, 더럽다는 생각을 버리지도 못했고, 그저 엉겁결에 남이 하는 걸 따라할 뿐이었다.

아이들의 신발에 대고 약속했다. 거대한 삶의 모순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작은 것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기다리지 말고, 먼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맨발로 대지를 누비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인도 아이들은 진흙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돌멩이색 두 발로 거친 땅을 뛰어다녔다. 봉사단 학생들과 교감하며 저마다 사랑의 모양을 그렸다. 차가운 손이지만, 서로 다가와 손을 잡고, 아끼는 간식을 나눠주고, 자신이 만든 목걸이를 덤덤하게 건넸다. 눈물을 흘리는 학생 눈에 호~ 하고 바람을 불어 눈물을 닦아줬다. 그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줬다. 같이 우는 대신 웃음으로 이별을 맞이했다.

입고 있던 봉사단복을 세탁한 뒤 모두 기부했다. 무거웠던 짐이 가벼워졌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 현지 학교에 도착한 첫날 그 모습 그대로, 불필요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봉사단의 마지막 임무였다. 인도에서 배운 것들을 각자의 삶에서 풀어내는 것이 봉사단의 첫 번째 임무였다.

결핍으로 가득한 인도에서 사랑을 가르치고 또 배운 날들. 그 뜨겁고 푸르른 계절.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은 반드시 온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처럼, 인도의 첫날은 다시 온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열 한 번째 칼럼입니다. 인도 시리즈 마지막 글이네요.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TCjPfA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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