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1 12:22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호텔에서 한 달 살기
“와, 좋겠다. 선배. 생각만 해도 신나는데? 아침에는 호텔 조식, 저녁에는 거품 목욕과 와인 한 잔!”

내가 집에서 나와 호텔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을 때, 여행 마니아인 후배는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나도 한때 호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 나름의 동경이 막연함으로 바뀌는 데는 몇 날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 전국 각지의 호텔을 이용해 봤지만, 이번 호텔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숙박 시설이자 형태였다.

“그건 여행 가서 하루 이틀 지낼 때 얘기지.”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배는 호캉스도 몰라? 일부러 집에서 나와 여행 기분을 내기도 하잖아? 난 호텔에서 살면 소원이 없겠는데. 며칠이나 머무르는데 그래?”

“한 달.”

“뭐? 한 달? 선배 집에 온천이라도 터진 거야?” 후배의 들뜬 목소리가 정점에 이르렀다.

그녀가 상상하는 호텔은 내가 마주한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은 바다 전망도, 산 전망도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아파트 조망권이었다. 창가 앞으로 거주민들이 보일 만한 거리였다. 위치는 서울 외곽 지역이었고, 주변은 휑해 보이는 도로와 콘크리트 숲뿐이었다. 브랜드 이름이 있는 체인 호텔이긴 하지만, 특급 호텔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기 투숙에 전례 없는 할인을 적용받아 당분간 살게 된 것뿐이었다.

날씨가 따뜻한 동남아 국가나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한국인이 굳이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경우는.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돌이켜 보면, 내가 묵을 호텔이 어떤 곳인지 검색해 볼 때가 가장 좋았다. 숙박 후기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곳에 들어와 후기를 쓰고 있었다. 화면 속 호텔은 실제의 그것과는 달랐다. 가장 좋은 호텔은 늘 사람들이 SNS에서 자랑하는 호텔이었다.

“좋으면서 왜 싫은 척하고 그래? 호텔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후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호텔에서 생활하면 좋을 것 같지? 내 얘기를 좀 들어봐.”

나는 호텔에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들어왔다. 일을 해야 했다. 거주한 지 일주일이 지나가면서 호텔은 차츰 생활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견뎌야 하는 생활일 뿐, 지키고 싶은 일상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밖에서 호텔을 바라보면 그 안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한 달을 살기 위한 시설과 생활용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조리 기구가 없어서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고, 냉장고가 작아서 음식을 보관할 수도 없었다. 매일 호텔 뷔페를 이용할 수 있는 지갑도 없었다. 편의점 음식도 하루 이틀이었다. 세탁기와 건조대가 없어서 빨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달 치 빨랫감은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가장 좋은 세탁 방법은 같은 옷을 최대한 오래 입는 것이었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책상은 좁았고, 오렌지빛 조명은 어두웠다. 햇빛도 잘 들지 않았다. 글을 쓰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별도로 스탠드 3개를 가져다 놓아야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빛에 굶주리게 됐다. 손이 가지 않는 소모품, 환기 시설이나 방음 문제, 상시 전원의 부재 등 하나하나 짚으면 끝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텔이 일반 거주지가 아닌 이상 투숙객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었다. 정작 문제는, 호텔의 최대 장점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아, 이런 사람이었어요?”

겉으로는 친절한 하우스키퍼 아주머니의 속마음. 모르는 사람이 매일 방에 들어와 공간을 정리한다는 것. 내가 펼쳐놓은 물건들과 하루 동안 남긴 흔적들을 확인한다는 것. 내가 영위하는 생활 패턴과 삶의 단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 사생활이 공공재가 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작 집에 있는 것보다 자유롭지 않고,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만 했다.

“특급 호텔 간다고 달라질 건 없겠네, 선배.” 후배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든 사람이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을 떠올리며 말했다.

“응. 집이 최고라는 건 바뀌지 않아.”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다섯 번째 칼럼입니다.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OiFPkw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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