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 17:50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 마이너스 인생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것은 더 이상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아니라 내 삶의 신조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대를 관통하며 회자되는 이 격언이 모두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정신 승리 아니야? 네가 나는 자연인이다 자연인도 아니잖아?”

내 얘기를 듣던 친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나른한 봄날, 같은 햇살을 받으며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보다 <아큐정전>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일까. 아니면 둘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자유는 구속이야.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거지.” 그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도 아닌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일감이 끊긴 지 오래돼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배고픈 사람은 간헐적 단식 같은 거 못해. 그것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자유를 얻은 그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돈의 공백은 삶의 여백이 아니라 압박이었다. 그런 그에게 내 얘기는 사변적이고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다.

누구나 한 명의 생활인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비루한 현실에의 종속이 아니라 그 어떤 신념이나 철학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 햇살도, 바람도, 공기도, 이 공원 풍경도…. 정말 소중한 건 돈으로 살 수 없잖아?”

내가 말을 돌리자 그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돈이 되지 않는 거만 내가 가질 수 있어. 마이너스 인생의 특권이지.”

마이너스 인생, 이라는 말이 나와 무관하지 않게 들렸다. 묘하게도 위대한 소설가의 전언보다 그가 자학하며 던진 한 마디가 내 삶의 신조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펀드 투자에 광풍이 불던 시절, 무리하게 빚을 내서 펀드에 가입했다가 해외 경제에 이바지한 적이 있었다.

“나만 믿어. 이런 상황에서는 돈을 뿌린 만큼 돈을 버는 거야.” 가까운 지인에게도 굳이 투자를 독려했다가 평생 먹을 욕을 단기간에 모두 먹었다.

그 끝을 모르고 매일 상승하던 지수가, 내가 매수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했는지 대세 하락으로 반전했다. 그야말로 가상화폐 같았다. 분명히 계좌에 돈이 있었는데, 한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래,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자.”

남은 건 정신 승리밖에 없었다. 결국 가보지도 못한 나라에 투자해 수입 세단 한 대 상당의 투자금을 날렸다.

하지만 대공황에 버금가는 투자 실패는 내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전환점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을 잃고 나서야 얻게 됐다. 허공으로 날아간 줄 알았던 돈이 결과적으로 종잣돈이 됐다.

느슨했던 경제관념이 제정신을 차리고 내 생활 패턴은 이전과 180도로 바뀌었다. 하나라도 더 더하기보다 하나라도 더 빼는 삶을 살기로 했다. 마이너스 인생의 시작이었다. 사는 데 굳이 필요 없는 것들, 과잉되는 것들, 남는 것들은 모두 처분했다. 중고 장터에 팔거나, 기부하거나, 미련 없이 버렸다. 자연히 쓸데없는 물건을 구매하는 일도, 내 경제 수준에서 벗어나는 소비도 없었다.

얼마 전 자동차 대리점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차 바꾸시죠. 요새 누가 14년이나 같은 차를 타요?”

“아직 차가 멀쩡한데? 멀쩡하게 잘 굴러가.”

“그래요? 그래도 그렇게 오래 타면 우리 수입이 멀쩡하지 않아서.”

그가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고 새 차를 뽑으라는 거였다.

소비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위해 그의 말을 따르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자신에게 의미 있는 소비를 찾는 것이었다. 물질이 아닌 경험에 돈을 쓰고, 가능한 한 친환경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단체들을 후원하는 것. 신용카드 한 장이 나를 대변하지 않도록 내 삶을 조정하는 것. 그것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자유의 한계와 삶의 의미를 규정했다.

“글 잘 써. 나 알바하러 갈게.”

친구가 일을 하러 떠나고, 나는 내가 내뱉은 말에 부채가 없기를 바라며 펜을 들었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간지 <위클리 공감>에 연재하는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그 일곱 번째 칼럼입니다. 글쓰는 게 갈수록 더 힘드네요 ㅎㅎ

칼럼 링크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P4pmo4DGJM000
http://gonggam.korea.kr/fcatalog/ecatalog5.jsp?Dir=1665

                                          posted by woogun | 일상다반사 | 관련글(trackback) | 댓글달기


이 글의 관련글(trackback) 주소 :: http://www.woogun.net/tt/rserver.php?mode=tb&sl=392
이름 ::   비밀번호 ::  
홈페이지 ::    비밀글로 등록
                   광고성/음란성 글이 아닙니다.

    1  2  3  4  5  6  7  8  9 ...   323    
 
        
분류 전체보기
일상다반사
감성코드
호주 이야기
뉴질랜드 이야기
말레이시아 이야기
일본 이야기
추억의 사진·영상
 
 
  Total 384813  Today 72


              admin